고재희 추자면사무소

최영 장군(1316~1388)은 고려말 명장으로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고려왕실을 지키려 한 명장군이면서 재상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리고 추자도 방문객 중 올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추자초등학교를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길가에서 최영 장군 사당과 만나게 된다. 이 때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딴섬에 최영 장군 사당이 왜 자리잡고 있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필자 또한 추자면사무소에서 처음 발령 받았을 때는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을 때 최영 장군의 사람 됨됨이에 다시 한 번 존경심을 갖게 된다.  

최영 장군 사당이 지어지게 된 계기는 공민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 말을 키우고 있던 몽고인 목자들이 2000필의 공마를 거부하고 일명 '목호의 난'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난을 정벌하기 위해 최영 장군이 제주로 가던 중 사나운 바람을 피해 추자도로 대피하게 되고 그 정박기간 동안 추자도 주민들에게 그물 깁고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줘 당시 궁핍한 생활고에 찌들어 살던 추자사회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게 돼 추자주민들은 이 고마음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만들어 매년 음력 2월 1일 풍어제와 병행해 사당제를 지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최영 장군 사당을 제주도기념물(제11호)로 지정 관리해오고 있다. 

또한 최영 장군은 고려 말 혼란한 시기에 많은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후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전리품은 사치라며 분배를 거부한 일화와 600여년 전에 이미 관리를 채용하면서 영리를 꾀하는 자, 풍기문란 한 자, 도덕과 법을 지키지 않는 자를 제외하는 기준을 적용했다는 사실은 최근 공공기관과 사설기관을 막론하고 채용비리에 대한 국민여론이 들끓고 온 국민이 채용비리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상실감에 젖어 있는 우리사회에 신선한 충격이자 부패가 만연된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우리공직자들 아니 나부터 먼저 최영 장군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강직하고 청렴한 일꾼으로 환골탈퇴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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