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 제주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소장·논설위원

단풍이 짙어지고 있다. 새싹이 돋아나고 푸름을 뽐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다. 가을 단풍을 형형색색 물들인 자연의 물감은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뎌냈음을 경의하며 매달아준 훈장 같기도 하다. 가을단풍과 우리네 인생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푸르다 못해 검을 듯했던 녹음은 우리네 젊음이었고 단풍은 장년이다. 장년은 중후함과 풍성함, 그러나 이면의 쓸쓸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2.4세.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에 은퇴를 시작한 중장년층은 이제 막 시작한 가을이다. 이제는 '100세 시대', 60대 전후는 늦가을이 아니다. 여름을 지나며 영글기 시작한 과일이 가을이 깊어지며 익어가듯 인생의 열매를 키워야할 시기다. 

그래서 재취업 등 이른바 '신중년'의 일자리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의 '신중년'은 이전 세대보다 비교적 교육 수준이 높다. 기업·교육·금융 등 경력도 다양하다. 우리나라 신중년(지난해 기준)은 1378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 생산가능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신중년 일자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지난 8월말 신중년 일자리 확충 방안을 내놓았다. 신중년 '적합직무'에 만 50세 이상을 채용하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지원을 올해 2000명에서 내년 5000명으로 대폭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신중년 적합직무는 올해 55개에서 내년 84개로 늘어나고 신중년을 적합직무에 채용하는 중소기업엔 1인당 월 80만 원, 중견기업에는 월 40만원이 1년간 지원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중년 경력 활용 지역서비스 일자리 사업'도 신설된다. 사회적 수요가 있고 기여도가 높은 활동을 중심으로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등도 확충된다. 이와 함께 고령화추세에 따른 다양한 신중년 일자리를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설계하도록 지역단위 플랫폼으로 일자리사업을 지원한다.  

제주지역의 신중년이라 할 수 있는 베이비붐 세대는 8만9000명으로 도내 인구의 13.9%를 차지하고 있다. 제주 역시 이들 신중년들의 경력을 감안한 수요자 맞춤형 일자리 발굴이 시급하다. 사회공헌형 전문분야 일자리와 기업의 육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여기 눈여겨봐야 할 사례가 있다. 평균 근무연령이 60대, 정년이 100세인 시니어 정보통신기술(IT) 전문기업인 '에버영코리아'다. 서울에 본사를 두고 경기도와 강원도에 지사가 있다. 주 사업내용은 네이버 포털 서비스의 이미지·영상·콘텐츠 커뮤니티 모니터링 및 블러링이다. 지도 거리뷰에서 사람 얼굴·차량번호를 모자이크 처리하고 네이버에 올라오는 콘텐츠·이미지·동영상을 모니터링해 부적절한 것들을 삭제한다. 중국 업체에 맡겼던 사업을 에버영코리아가 대행함으로써 일자리창출과 사회공헌이 동시에 실현되고 있다. 직무만족도가 높아 이직률도 낮은 이 기업은 신중년과 시니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제주에는 정보통신기술 대표기업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제주도가 '다음'과 손을 맞잡고 신중년들을 위한 콘텐츠 관리기업을 육성해 줄 것을 제안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결단과 제주도 행정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의 지역단위 플랫폼 일자리사업 육성이라는 정책기조에 맞춰 이런 사업들을 추진해 나간다면 제주에 신중년들에게 인생2모작 시작을 위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인생2모작 당장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오늘의 단풍이 어제는 푸름을 풍미했듯 오늘의 푸른 잎들도 자연의 시간 속에서 단풍이 들 것임은 불문가지다. 어차피 모두가 가야할 길, 정책적,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중년들의 열정과 제주의 적극적 지원으로 그네들의 삶이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제주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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