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함은 피로감을 준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진부함은 악이다'는 말까지 하였다. 예술이나 철학에 있어서 진부함은 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철학의 존재 이유는 개념의 전복에 있고, 예술은 낯설게 하기에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처럼 진부하게 들리는 말도 없다. 하지만 그처럼 진실일 때도 없다. 

누군가 들고 온 작은 선물 꾸러미, 그 속에는 바나나 한 개와 사탕 몇 알이 들어 있었다. 받는 순간, "아, 행복해"하고 탄성을 질렀다. 기대했던 것보다 나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던지 선물을 주던 이가 겸연쩍은 얼굴로 급하게 돌아섰다. '뭐 이런 걸 가지고…'라는 빛이 역력했다.  "진심이에요"라고 말했더니, 돌아서던 이가 환하게 웃었다.

이처럼 생각지도 않게 좋은 선물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 무한 행복감에 젖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지난주가 그랬다. 우연찮게 참석한 출판기념회 자리, 늘 그렇듯이 형식상자리를 지켜줘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사실 나는 그 출판기념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몰랐다. 알고 있는 건 모 프로그램에서 만난 분의 남편이라는 것 뿐. 

50일간의 집짓기 여행을 다녀온 기록을 책으로 냈다. '집짓기 여행'이란 소재가 흥미를 끌긴 하지만 요즘은 하도 여행 관련 책이 많아서 그와 비슷하려니 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충격이다. "친구 노각이네 집이 지난겨울 불타버렸어요. 15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버렸는데, 그 휠체어조차 다 타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출판기념회 주인공은 집이 불타버린 친구의 집을 지어준 이야기를 쓴 것이었다. 책을 쓴 이유는 집은 다 지었는데 그 속에 들어갈 구가며, 냉장고며 이런 게 필요할 것 같은데 '냉장고 하나라도 넣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욕심을 낸 거란다. '아, 이런 거였구나. 진짜 시처럼 와 닿는 삶이란 게 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서문을 여는 순간, 온몸에 퍼진 전율이 식은땀으로 흘러나왔다.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가슴을 저미며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눈물 없이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벌판을 지나 
벌판 가득한 눈발 속 더 지나
가슴을 후벼파며 내게 오는 그대여
등에 기대어 흐느끼며 울고 싶은 그대여

눈보라 진눈깨비와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쏟아지는 빗발과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견딜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럽던 시간을 지나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도종환,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닐 지도 몰라"라는 시인의 말에 나에게 시처럼 온 순간이 뭐가 있었지 생각하게 된다. 진심으로 와 닿았던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차 한 잔, 따뜻한 포옹…이런 것들이 수없이 있었으련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거짓 감정, 거짓 웃음 이런 것들이 나의 안면근육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을 늘 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감정 조절이 학습되었다. 기쁨도, 슬픔도 과하게 드러내면 안된다는 어릴 적 부터 강요받은 학습 메뉴얼은 이제껏 나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슬픔이나 고통스러운 감정은 더더욱 감추거나 숨겨야 한다. 내 감정 때문에 타인까지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지만 사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한마디로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무능한 사람이라는 평가 받기 싫어서이다. 물론 감정을 쉽게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비합리적인 신념 때문에 생긴 우스꽝스러운 일상의 풍경이다. 그러니 나오는 건 영혼 없는 말이요, 가식적인 웃음이다. 사람들은 나보고 잘 웃는다고 칭찬할 때가 많지만 그 또한 거짓일 때가 있으려니 싶다. 뭐가 어찌 된 노릇인지 확실히 떠오르지 않으니 이실직고 할 수도 없고, 막연히, 부끄럽다. 

사탕 몇 방울에도 진심이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거짓이라 할지라도 기분 좋은 선물이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진심이란 게 뭘까. 진심, 고향마을 언니 이름 같다. 이렇게 뭔가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려고 노력할 때 그 의미가 확실해진다. 이를테면 이런 그림처럼 말이다. 

이런 그림을 보면 참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에 한 표를 주게 된다. 동네 작은 도서관을 지키는 이들이 손님들에게 밝은 기운을 주기 위해 문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도서관을 지키는 일은 무급봉사이다. 거기에다 재능기부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무급봉사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은 봉사 같다고 해도 지원을 받거나 교통비정도는 지급받으며 하는 일이 대다수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한 번 방문한 걸 가지고 신문에다 봉사를 했다고 생색을 낸다. 뻔한 거짓말이 환대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도서관 입구에 완성된 그림을 보고 감탄을 하였다. 노란달이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음이 환해졌다. 전문 화가가 그렸다 해도 믿을만한 솜씨이다. 이런 풍경을 보고 흔히 '그림 같다'고 한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림은 현실의 이미지 또는 꿈꾸는 이미지일 뿐 사실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 그림은 사실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밝히고자 하는 이의 따뜻한 진심이 들어있는 그림이다. 이럴 때 나는 '세상은 살아볼만하다'는 말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진부하지만 진실이다.

진심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마음 씀씀이가 아닐까. 돈을 내거나 밥을 사고 선물꾸러미를 챙기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내고 마음을 흔쾌히 써서 정성을 다해 몸을 움직이는 것, 이것이 진심 아닐까. 

하루 종일 촛불을 켜고 앉아 있었다. 허수경 시인의 부고 소식을 듣고 마음 한 켠이 쓰라리고 우울했다. 인연이 있는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의 죽음은 왠지 일가친척의 죽음 같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모두를 아는 것처럼 씁쓸해진다. 촛불이 타는 건 사라지기 위해서일 뿐인데 나는 촛불을 켜면서 사라지는 그를 응원한다. '혼자 가는 먼 집' 쓸쓸하지 않게 무덤가에 핀 으아리꽃 무더기를 바친다. 이 또한 나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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