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덕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논설위원

우리사회에서 나들이 계절을 꼽으라면 봄과 가을이라는 약간은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도 매력 있는 나들이철로 자리 잡혔다. 이는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교통수단,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의 편안함, 개인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 분배 등 다양한 조건들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여가는 직업 이 외에 개인이 시간을 내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활동이다. 최근 들어 사람들은 일과 여가를 균형 있게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혼자, 벗과 더불어, 동호회, 사교공동체 등 색깔 맞는 구성원들과 함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곳이나 먼 곳을 찾아 떠난다. 

제주도는 자연풍광이 아름답고 역사문화유산이 곳곳에 널려 있다. 이에 제주 사람들도 집 밖으로 나가서 자연을 즐기는 기회가 많아졌다. 산과 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대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은 생각에 혼자 또는 둘이서 조용히 걷는다. 

반면 조용히 즐기려는 사람들 사이로 그들을 배려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즐거움에 취해 집단으로 움직이는 부류도 있다. 이때 물소리나 산새소리만 들리는 곳에 갑자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때문에 이곳이 산속인지, 도심 속에 있는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 

제주도가 유명세를 타면서 제주도 전체가 시끌벅적해지고 있다. 아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조용한 장소를 찾아다니지만 그곳도 잠깐 사이에 이용객이 많아지면서 고요한 장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떤 장소를 언제 찾아가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 사항이다. 그래도 같은 공간에 머무는 공간 공유자 간에 배려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행동이 아니다.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시간적, 정서적 피해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을 멈추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몽골 초원지대에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일명 은하수라는 별무리를…. 사방이 깜깜하고 옆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 시간, 많은 사람들이 은하수를 보기 위해 하나 둘 모여들었고 각자 조용히 숨소리만 내면서 우주관찰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요함과 적막감을 한순간에 깨 버리는 일행이 등장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어두워 서로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불편한 표정을 드러냈다. 일부는 소곤소근 별자리를 설명해 주고 일부는 양심불량인 집단에게 무언의 경고를 했다. 

그들은 고요함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들의 일상사를 보통의 억양을 떠들어댔다. 그들은 우리들이 알 만한 단체의 이름으로 참여한 여행자들이었다.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실망감과 허탈감은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자연을 본다는 것, 자연과 친해진다는 것은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여행은 일탈을 꿈꾸게 한다. 요즘 제주의 들판에는 억새와 단풍 등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대상들이 널려있다. 지인들과 함께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일 수 있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 세잎클로버는 네잎클로버와 공존한다. 특별함과 평범함이 공존한다는 말이다. 이는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낯선 이들끼리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이 다를 지라도 지켜져야 할 공통분모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제 우리들도 자기만의 흥겨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보다 같은 공간에 있는 타인의 고요와 정적에 대한 갈망을 알아주는 주는 예의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끼리 같은 공간에서 대상을 즐기는 방법과 느낌은 다를 수 있지만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공유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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