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경대사보월능공지탑비". 통일신라 후기 승려 진경대사의 사리탑으로 당시 김해의 실력자로 등장한 쇠유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쇠유리, 구족달, 김정남, 박수경. 이제까지의 역사 속에서 이들의 이름은 ‘낯섦’ 그 자체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이 땅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왔던 실존적 인물이다.

 부경역사문화연구소가 펴낸 「10세기 인물 열전, 쇠유리부터 능창까지 후삼국 22인의 삶」은 여말 선초, 정확히 서기 850년에서 950년 사이, 그 역사적 격변기를 살아간 22명의 삶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김해지방에서 일었던 사회 변동의 중심에 서 있던 호족 쇠유리와 강원 보광리 보현사 낭원대사 탑비와 충북 중원군 정토사지 법경대사 탑비에서 그 글씨를 만날 수 있는 예술가 구족달, 또 신라인 통역 가이드 김정남의 이야기는 천년 전을 살다간 인물들의 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승려이면서도 예술적 재능을 떨친 진감선사 혜소의 삶은 그 만만치 않은 예술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중심부 인물뿐만 아니라 역사의 대세에 반기를 든, 즉 패자의 편에 섬으로써 스스로 이름을 남기길 거부했던 인물까지도 아우른다.

 왕건의 군사반란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 임춘길은 고려 건국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고려사의 반역전에 수록되는 등 홀대를 받았다.

 또한 신라 말기 진성여왕 대에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기 몸을 팔아 노비가 돼야만 했던 지은의 삶과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생매장하려 했던 손순의 일화들은 당시 역사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승자만의 역사가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인물들의 삶에 주목하고 있는 이 책은 앞으로 천 년 후 우리의 모습이 후대에 어떤 모습을 비춰질지 되묻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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