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잃고 그 그리움조차 잃고/사람 사랑하는 마음을 잃고 그리워하는 나조차 잃고/참말 혼자서 한번 둘러볼 만한 곳/그래서 어두운 기분을 확실히 어둡게 할 수 있는 곳/바다를 보던 눈으로 산을 보고/산을 보던 눈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문득 다 내려놓고 주저앉고 싶은 곳/섬보다 더 먼 곳, 내 곁의 저 세상/그러다 지치면 한 스무 해 벼린 창과 칼을 들고/세속에 나와 다 쳐부술 큰 마음 키워줄/저 叛逆의 아름다운 이름”‘변산’중

 이희중의 시는 현실에 대한 엄정(嚴正)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서문에 ‘건강한 편견’을 갖겠다는 선언에서도 알 수 있다.

 요절한 작가 이균영의 주검 앞에서 그는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견디기를 더 연습하겠습니다/울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미래라는 막연한 환상성을 배격하고 철저히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저자의 태도는 단호하다.

 시간이라는 것은 어쩌면 인간을 하나의 객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라는 그의 인식은 기존의 억압적인 관행과 금기, 금제들을 배격한다.

 그의 이런 모습에서 살아있음의 환희, ‘지금 여기’에서 삶의 무한한 확장을 꾀하는 독자들은 “고독한 맹수”의 모습을 발견한다.

 세속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큰마음을 지녀야 하고 그 큰마음을 키워주는 곳이 ‘변산’이다. 풍경 속에서 반역을 꿈꾸는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들은 일탈과 해방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심야에 일차선을 달리지 않고”“남은 남들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재성을 추구하는 시인의 강인하면서도 냉철한 시간관을 엿볼 수 있다.

 직선적인 시간관에서 탈피, 실존적 시간관을 지향하는 시인에게 세계의 지배질서는 내일의 안위와 행복이라는 명분 아래 끊임없이 현재의 행복을 강요해 온 것일 뿐이다.

 시인은 현재의 일상에서 오늘날 삶의 가치와 의미를 구가하며 인간 실존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