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이슬람 세계가 충돌한 최초의 사건인 ‘십자군 전쟁’. 200년 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은 세계사에서 성전(聖戰)으로 기록되고 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소집한 십자군은 소아시아에서 아라비아 반도까지 ‘하느님의 이름’으로 진격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십자군 전쟁은 현재까지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인들의 시각에 의해 성전(聖戰)으로 기록된 십자군 전쟁을 아랍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 책은 유럽의 시각으로 규정된 세계사를 바꿔야 할 때가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십자군 전쟁을 ‘성전’이 아닌 대학살과 약탈로 무슬림들의 삶이 짓밟힌 반문명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제4차 십자군 원정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기수를 갑자기 콘스탄티노플로 바꾼다. 지중해 상권을 차지하려는 베네치아 상인들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원정대는 같은 기독교인을 죽이고 비잔티움의 보물을 약탈한다.

 유럽인들은 아랍인을 야만인으로 몰아세웠지만 정작 야만은 유럽인에 의해 자행됐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마라 마을에 도착한 한 무리의 십자군 원정대가 보여준 잔인함은 야만인으로서의 유럽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투르크인들과 사라센인들의 인육과 개를 먹는 잔인함을 보여줬던 것이다.

 아랍은 12세기 이미 10만권의 장서를 소장한 도서관과 잘 정비된 우편체계, 상하수도 시스템을 가졌다. 문화적으로 과학적으로 당대의 ‘선진’은 유럽이 아니라 아랍이었던 것이다.

 사자왕 리처드는 포로를 무자비하게 죽였지만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은 기도교인들의 몸값을 감해주고 귀족들의 경우 그들의 재산을 가지고 떠날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야만과 문명의 일반론적 인식이 역전되는 순간을 만난다.

 200년 간에 걸친 장대한 싸움을 철저히 아랍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 책은 기독교 국가의 부당한 침범의 역사와 가슴에 단도를 품은 암살자의 모습으로 연상되는 아랍인의 이미지를 수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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