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정치부 부국장

'소문난' 잔치였다. 제주 비엔날레 얘기다. 제주에서도 문화, 특히 미술을 대표하는 대형 행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까지 꼬집고 싶지는 않지만 기획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소문'투성이였다. 단일 문화행사로 역대 최대인 15억원의 예산을 투입했고,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비엔날레'라는 판을 깐다는 점부터 그랬다. 몇 번이고 주제가 바뀌고, 행사시기를 조정하고, 예술감독을 선임하고 하는 과정을 건너 들었다. 관람객 반응도, 참여한 작가들의 평가도, 진행한 프로그램들의 성과도 어느 것 하나 시원한 것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학예사들이 갑자기 자리를 옮긴다거나 하는 불편한 일들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다.

소문의 중심에 있던 이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하나둘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주도 감사위원회은 비엔날레를 전후한 시기에 대한 특정감사를 통해 미술관에는 기관 경고를, 미술관장에게는 무려 23건에 대한 시정, 주의, 권고 등의 처분을 요구했다. 감사위의 의뢰를 받아 수사를 진행한 제주서부경찰서는 전 도립미술관장과 도 소속 사무관을 업무상 배임과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는 옛말이 하나 그르지 않은 상황이 됐다.

물론 처음부터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책임도 크다. 전문가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도민이 낸 세금을 들여 치르는 사업에 대해 지켜야 할 기준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던 것은 책임을 쥐어준 제주도 차원에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몰래 경제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몰랐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심신미약'의 잣대도 그렇다. "술에 취해 있어서 기억이 안 난다"는 말에 대한 국민적 정서는 이미 냉정해진 상태다. 스스로 자초한 심신미약 상태인 '만취'를 감형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법의 취지에 맞는 것이냐는 의문이 공감을 사고 있다. 형법 10조3항은 '의도적으로 만든 책임 무능력 상황에 대해서는 감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심신미약 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음주운전이나 주폭 등에 대해 처음부터 자신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고 있다.

제주는 대형 문화 행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과거 두 차례 세계섬문화축제의 실패 경험은 아직 진행형이다.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설명에도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는 행사에 대해 도민 사회가 동의하지 않을 정도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는 차원을 떠나 이번 비엔날레가 제주에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일 수 있다는 점을 더 걱정하는 이유다. 비엔날레라는 단어만 나오면 의도치 않게 신경이 곤두선다. '불모지인 제주에…'라는 설명 자료를 받아들었을 때부터 그랬다. 지금은 가뜩이나 분위기가 그렇다. 새로운 도립미술관장은 자신과 관계없는 영문 모를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미술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내년 제주도가 긴축예산을 짜면서 문화 현장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사와 수사 결과를 접한 도민들 입장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만무하다. 구조적 요인이 누적된 결과하고 하더라도 풀어야 할 것들이 많다. 중요하고 또 확실한 것은 준비가 부족했고 너무 서둘렀다는 점이다. 제주 미술의 한 단계 전진과 문화 발전을 목적했다면 지역 문화 생태계를 제대로 읽고, '다음'까지 내다보는 자세가 있어야 했다. 당장 뭔가 이뤄야 한다는 조급증은 결코 남 탓이 아니다. '시행착오'라는 사전 단계를 제외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한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다. 너무 안이했다는 지적은 자주 들어 좋을 게 없다. 마침 '2년에 한 번'이라는 성격에 매몰되는 대신 좀 더 시간을 두고 내실을 기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교훈을 얻은 만큼 이번에는 작아도 좋으니 '소문 날 만 한'결과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굳이 잔치가 아니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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