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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주목관아는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로 불려야"오용순 제민일보 독자
오용순
입력 2018-11-07 (수) 15:46:18 | 승인 2018-11-07 (수) 19:37:47 | 최종수정 2018-11-07 (수) 19:37:05

외대문인 진해루(鎭海樓)에 엄연히 걸려있는 '탐라포정사'라는 편액이 말해주듯 이곳은 조선시대 '탐라포정사'라는 오늘날의 제주특별자치도청이 있었던 곳을 일제강점기 일본 당국이 전부 훼철하고 그 자리에 법원, 검찰청, 경찰서 등을 지어 자리하다가 한 때 주차장을 건립하기로 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천만다행으로 복원을 결정해 제주시에서는 지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를 한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화층과 함께 문헌상에 나타난 중심건물인 동헌(東軒), 내아(內衙) 등으로 사용하던 홍화각(弘化閣), 연희각(延曦閣), 우련당(右連堂), 귤림당(橘林堂) 등의 건물터와 유구(遺構)가 확인되고 유물(遺物)도 출토됐으며 제주목관아의 주요시설 건물터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했다.

지난 1993년 3월 30일에 제주목(濟州牧)의 관아지(官衙址) 일대가 사적 제380호로 지정됐고 발굴 과정에서 확인된 초석·기단석 등을 토대로 하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와 '탐라방영총람(耽羅防營總攬)'등 당시의 문헌, 중앙문화재위원·향토사학가· 전문가 등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이를 바탕으로 지난 1999년 9월 복원을 시작했으며 30만 도민이 기와 5만장을 헌와(獻瓦)하는 등 우리들의 혼(魂)을 담아 2002년 12월 복원했다.

탐라포정사가 일제 강점기 완전 훼철되었기 때문에 그 자취가 거의 없어 우리는 편의상 옛 조선시대 목사(牧使)가 집정(執政)하던 정아(正衙), 또는 상아(上衙)인 제주목(濟州牧)의 관아가 있었던 터이므로 '제주목관아지(濟州牧官衙址)'라 불러 왔으며 복원 후에는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라 칭해오고 있지만 이제 복원이 됐으니 공식명칭인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를 그 이름으로 쓰고 불러야 한다. 

한편 제주목(濟州牧) 판관(判官)의 집무처이던 이아(貳衙·구 제주대학병원 일대)는 제주목의 산하기관인데 그대로 이아(貳衙)라 기록되어 있다고 말한다.

제주목관아는 그렇다고 틀린 표현은 아닌데 어디까지나 편의상 사용한 별칭일 뿐이고 이는 어느 곳이나 편의상 부르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공식명칭이 있으면 공식적인 자료에는 그 고유명사로 기록하고 불러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계당국이 앞장서 우리가 '제주특별자치도청'이라고 기록하듯이 모든 자료에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가 아니라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라 기록하고 그 공식명칭을 알려주는 일에 나서주기를 바란다.

오용순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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