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최근 서울 숙명여고를 비롯해 일선고교에서 시험문제·정답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내신과 수시전형 등 대입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시 대신 수능 위주의 정시 비중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고교)상피제'를 도입하자는 여론도 힘을 얻고 있다. 

상피제(相避制)는 원래 일정범위 내의 친족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을 제수할 수 없게 한 제도다. 이는 관료체계의 원활한 운영과 권력의 집중·전횡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상피제는 고려시대에 성문화되었는데 1092년(선종 9) 오복친제에 바탕을 두고 중국 송나라의 제도를 참작해 실시됐다. 일반적으로 본족·처족·모족의 4촌 이내와 그 배우자는 같은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고, 특별히 권력의 핵심 기관에는 사돈간에도 적용됐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관료제의 미비와 문벌귀족의 존재로 인해 철저히 실시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관료제도 발달과 권력의 집중·전횡을 막기 위해 보다 정제된 제도가 실시된다. 유교사상에 토대를 둔 부계친족사회의 성격상 그 적용범위가 4촌까지로 규정됐지만 고려시대와는 달리 모족과 처족에의 제한은 완화됐다. 적용 관청도 학관 및 군관은 제외되고 의정부·의금부 등 대상 기관도 구체화됐다. 조선 후기에는 규정이 더욱 강화돼 출계자(出系者·양자로 간 사람)의 경우 본가와 생가에 똑같이 적용되고 인척간에도 적용됐다. 지방관의 경우에도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에의 지방관 제수도 금지됐다. 규정 외에도 업무의 연관성이 있거나 권력의 집중이 우려되는 관청의 경우에도 상피가 적용됐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에 상피제를 적용해 같은 지역 출신의 장관과 차관을 배제한 바 있다. 

모든 시험은 공정해야 한다. 불법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규제·감시 장치도 필요하다. 하지만 상피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입시 위주의 과도한 경쟁이 난무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일깨워준다. 공교육 내의 평가과정에 공정성을 기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은 여전히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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