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잘 되면 농심은 한없이 기뻐야 마땅할 터다. 한해동안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농작물의 작황이 좋다면 농민들로서는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농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풍년이 들면 걱정이 앞선다. 생산량이 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다보니 농작물 가격이 하락하고 농가소득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풍년의 역설'이다.

제주산 월동무도 마찬가지다. 제주산 월동무는 매년 재배면적이 급증해 2000년 500㏊에 불과하던 것이 2016년에는 5100㏊까지 늘었다. 생산량이 급격히 늘면서 가격이 폭락하고 2014년부터 시장격리(산지폐기) 등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올해 역시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산 월동무 재배면적은 6475㏊다. 산지폐기가 이뤄졌던 지난해보다 3.2%, 평년보다 13.3% 증가한 수치다. 예상 생산량 역시 34만7867톤으로 지난해산보다 19.2%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월동무 등 월동채소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제주도가 재배신고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강제성이 없으니 신고를 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 또 신고를 했는데 예상 재배량이 많다고 막을 방법도 없다. 그러다보니 과잉생산을 우려해 올 상반기부터 농가에 월동무 재배를 자제할 것을 계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배면적은 오히려 주산지인 동부지역뿐 아니라 서부지역 등 도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른 작물들에 비해 수익성이 좋고 재배가 수월한 탓이다.

지금 예상대로라면 올해 제주산 월동무의 과잉생산에 따른 처리난과 가격폭락은 불가피하다. 가격안정을 위해 애써 키운 농작물을 갈아엎는 산지폐기도 되풀이 될 것이다. 물론 지난해처럼 기상이변으로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말그대로 요행수일 뿐이다. 적정생산을 위한 수급조절 등 농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농정당국은 농가에 월동무를 심지 말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경제성을 갖춘 다양한 대체작물 개발 등에 적극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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