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남 정치부 차장

바둑계에 전해오는 속설이 있다. '장고 끝에 악수 난다'다. 장고(長考)는 대국 중 수의 변화나 수단을 만들기 위해 오래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에 너무 사로잡히다 보면 국면의 흐름을 망각하기 쉽고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무의식 상태에 빠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실제 대국 중 장고 끝에 악수를 둔 예가 많이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다. 이처럼 '장고 끝에 악수 난다'는 원래 바둑이나 장기 대국 중 사용하던 말인데 관용어 성격을 갖게 돼 일상생활에서 너무 고민하던 일에 결론이 오히려 안 좋게 나왔을 때 쓴다.

'장고 끝에 악수 난다'를 실험으로 입증된 적도 있다. 10년 전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란 노드그렌 박사와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압 데익스터호이스 박사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신중한 사람과 배짱을 믿는 사람 중 누가 더 좋은 판단을 하는지를 실험했다. 연구결과 새 집이나 차를 살 때 이것저것 모조리 따져보는 사람보다는 순간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려 사항의 숫자가 적을수록 심사숙고 그룹이 좋은 선택을 했다. 반면 고려 사항의 숫자가 늘어나 심사숙고 그룹은 '오랜 숙고 끝에 잘못된 결정을 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예컨대 아파트를 고르는 그룹에서 위치, 크기, 값 등 3가지 요소를 놓고 선택할 때는 심사숙고 그룹이 좋은 아파트를 골랐다. 그러나 검토 항목을 9개로 늘리자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신속하게 결정한 사람이 더 좋은 아파트를 골랐다.

민선 7기 제주도정이 결정을 내려야 할 현안이 산적하다. 국내 1호 첫 외국인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원 불허 최종 발표와 오라관광단지 자본검증 재개, 중앙차로제 확대 등 원희룡 지사 가 6기부터 미뤄온 숙제들이다. 그나마 원 지사가 행정체제개편과 관련해 최근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권고안을 수용해 행정시장직선제·행정권역 4개 재조정을 추진키로 했지만 도의회 동의, 주민투표, 특별법 개정 등 갈 길이 멀다.  여러 생각에 '악수'를 두기보다 간단한 진리가 있는 '묘수'를 찾을 때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