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논설위원

올해 핫하게 달구며 우리사회를 관통한 키워드의 하나로 '소확행(小確幸)'을 꼽을 수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홀로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 친한 친구와의 치맥 한 잔, 좋아하는 연예인 입덕, 강아지와의 공원 산책 등 "나 지금 이렇게 행복해"라는 소확행의 이야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름철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다. 

'소확행'은 일상의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말한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정결한 냄새가 풍기는 하얀  면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갓 구운 따뜻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등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표현한 데서 시작됐다. 우리 사회에선 매년 마케팅트렌드를 예측해온 서울대 김난도 교수팀이 지난해 이맘때에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소개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한 현상이다. 

오늘날 청춘들은 왜 커다란 꿈의 성취를 통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일상의 작은 행복에 매달리는 것일까.

'소확행'의 등장은 노력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 각자도생으로 살아가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정글이 되어버린 사회다. 성공이라는 열차에 올라타고자 경쟁과 속도에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버둥대지만 내동댕이쳐지기 일쑤다.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에 있는 포식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우리사회에 똬리를 틀었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취직한다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신분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크다. 천신만고 끝에 정규직으로 취업을 해도 치솟는 물가와 집값을 감당할 수 없다. 기성세대가 동네 뒷산 산책하듯 가뿐했던 결혼·출산·내집 마련이 청년세대에게는 에베레스트산 정복 같이 높고 힘든 것이 돼 버렸다. 부익부 빈익빈, 부의 세습도 기가 찬데, 최근엔 일자리마저도 세습이 벌어지고 있다고 연일 시끄럽다.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지속적인 저성장 기조 속에서 기득권층이 쌓은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때리기다. 적폐세력이 분명하게 보이면 '적폐청산'으로 돌파해볼 수라도 있겠지만, 우리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는 구조가 바로 적폐라면 그걸 무슨 수로 청산할 수 있겠는가. 

노력하면 공정한 보상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확신을 주는 사회에선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커다란 미래를 위해 당장의 작은 행복은 기꺼이 유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청년들에게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전제가 무너져 버렸다. 소확행은 이런 사회에서 위안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사회가 강요한 현상이고 그러기 때문에 불가능한 미래에 투자하는 대신 당장의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소소한 작은 행복은 억지로 만들어 내거나, 돈을 주고사야 할 소비는 아닐 것이다. 소확행 붐이 일면서 의미가 변질되고 있음을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다. 지나치게 소확행을 찾아 헤메며 만들어 내려는 현상이 그러하고 지금 이것을 사라고, 이것을 하는 게 소확행이라고 부추기는 행태가 그러하다. 

격렬한 운동이나 노동을 하면서 땀을 빼고난 후, 맥주한잔을 마실 때 온 몸으로 느끼는 갈증해소의 짜릿한 순간은 소확행이다. 그러나 집에서 하루종일 뒹굴다 마시는 맥주는 아무리 소확행을 외친다 해도 행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트림만 불러일으킬 뿐.

"행복은 결과가 아니고 과정에 있었다"고 담담히 털어놓은 어느 노교수의 퇴임사가 떠오른다. 명확한 삶의 목표를 설정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목표달성을 위한 과정 속에서 발견하고 느끼고 또 만들어 가는 행복이 '진정한 소확행'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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