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논설위원

007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활약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던 악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오랜 세월 준비했던 시설은 쉽게 파괴된다. 사소한 실수에 불과한 조작으로 첨단 기기들은 오작동되고 거대한 기지는 화염에 휩싸여 불과 몇 분 안에 초토화된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장면들을 압축했다고 양해하더라도 질문은 남는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들을 활용해 구축한 설비들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니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지난 주말에 서울 한복판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첨단 통신회사의 건물에 일어난 불은 재빨리 진압되지 못했다. 

또 그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정상의 삶을 이어가지 못하고 허둥댔다. 이동통신은 작동하지 않았고, 이용자들은 고립감에 시달렸다. 이동 중에도 지인들과 교신하고 세계의 뉴스들을 실시간으로 소비하며 살아가던 삶의 리듬은 어그러졌다.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는 결제 수단이 마비돼 가게의 문을 열어 장사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첨단 통신문명에 의지하고 살아가는지 확인하게 됐다. 

대중이 예측하던 것보다 빠르게 인공지능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이를 입증한 사건이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을 여유있게 제압한 일이었다. 

바둑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성능이 더욱 향상됐지만 의젓하게 인류와의 승부를 거절하고 은퇴했다. 대신 전문기사들의 스승의 역할을 맡게 됐다. 전통과는 다른 이론이나 수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시합 도중 식사시간이나 휴식의 기회도 차단돼 간다. 혹여 선수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혹을 차단해야 한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첨단기술을 도입해 판정이 공정하게 내려지도록 애쓰고 있다. 기록경기는 물론이고 대부분 구기 종목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재현 혹은 재구성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바탕에서 승부를 겨루도록 한다. 많은 관중이 주시하는 경기일수록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기 위해 비디오판독이라는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예전과는 달라진 경기장 풍경이다.  

가사 혹은 사무의 일을 돕거나 대신할 수 있는 도우미 기능의 기기들도 고안된다. 많은 산업분야에서 로봇이 노동자의 역할을 대치했다. 치안을 위해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상황을 살피며 기록하고 있다. 승용차 운전이 곧 자동화된다고 전망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인간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편하고 멋진 신세계가 열리는 것일까. 

첫 번째 우려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리라는 점이다. 정보 빈곤층이라는 용어도 생겨난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정보능력으로 그 위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산업화의 도상에서 우리나라는 많은 기능공을 양성했다. 기능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기계조작의 능력이 아니라 제작의 노하우였다. 

두 번째 근심은 기술문명의 도움을 받을수록 사람다움을 쉽게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휴대폰으로 말미암아 대부분 사람들은 기억이나 판단의 기능이 퇴화되고 있다. 생활 혹은 문화가 축적한 많은 정보들은 쉽게 유통 혹은 공유되고 있으니 순식간에 검색해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류와 인공지능의 협력의 시기를 지나서 서로 경쟁하거나 적대적으로 다투는 때가 도래하리라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여러 공상과학영화에서 다루었듯 인류의 시대가 기계의 시대로 대치된다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편한 것이 마냥 공짜는 아니라는 자각이 든다. 새로운 질문과 과제에 답해야 하는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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