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농 홍정표 선생 유품집 「제주의 아이들」 중에 나오는 "제주의 큰 굿".
 제주는 신화와 전설이 살아있는 문화의 보고다. 그 문화의 바탕에는 1만8000 신들의 이야기, 무속(巫俗)이 있다. 제주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무속(巫俗)은 절해고도 섬사람들의 삶을 이뤄내는 근간이요, 힘이었다.

 제주민중들의 삶의 원동력은 신을 ‘놀리는’ 심방들의 사설을 통해 드러난다. 심방들이 굿을 할 때 풀어내는 사설, 곧 본풀이는 신들의 내력담이다. 이런 내력담은 심방의 굿 사설과 무가집을 통해 잘 드러난다.

 도서출판 제주문화 편집부가 최근 펴낸 「風俗巫音」은 제주 무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도서다. 지금까지 출간된 무가집이 ‘옛글’이나 어려운 무속 용어로 독자들의 이해에 어려움을 주었다면 이번에 출간된 「풍속무음」은 자청비, 삼승할망, 강림차사, 소별왕 대별왕 등 제주신화 속의 주인공들의 삶의 내력과 제주신화의 얼개를 짤 수 있는 귀중한 도서다. 이두식 차차표기와 한글(옛글)로 쓰여진 것을 고찬화·김순이씨가 쉬운 현대어로 고쳐 써 새 빛을 쬔 것이다.

 이 책은 1983년 고서 수집에 앞장서온 전직교사 고찬화씨(제주시 도남동)가 남제주군 대정읍 서림리에서 문정봉 심방에게서 입수해 복사한 것을 다시 현대어로 고쳐 쓴 것이다. 지난 1994년에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에서 영인본으로도 출간 한 바 있다.

 ‘풍속무음’은 풍속(風俗)으로서의 무당소리(무가)라는 뜻이다. 자청비, 삼승할망, 강림차사 등 제주신화속 신들의 직능별 내력이 굿 사설로 풀어써 있다.

 이 책은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다. 제1권 초감제본, 2권 초공본, 3권 이공본, 4권 삼공본, 5권 천지왕본, 6권 서경본, 7권 칠성본, 8권 채사본, 9권 지장본 …18권 버드남본, 19권 영천이목사본, 20권 부록으로 돼 있다. 각 권마다 하나의 재차(祭次)를 기술해 놓고 있다. 또 제1권 초감제본에는 ‘초진마지굿’‘국도장갈임굿’‘물감상굿’ ‘새몰아냄굿’‘석살림굿’ 등 소제차로 구분해 놓아 제주 굿 제차 이해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연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권에 쓰여있는‘歲戊辰三月日 孤松 文彰憲膽’과 권 20 말미의 ‘歲乙酉臘月日 於東京田村町寓居 文貞奉 書寫’를 보면 이 책은 1928년 3월에 문창헌이 필사한 것을, 1945년 10월에 문정봉이 옮겨 쓴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연대를 존중하면 「풍속무음」은 赤松智城의 「조선무속의 연구」(大阪屋號書店·1937년)를 앞지른 최초의 무가집이 되는 셈이다.

 평생을 제주무속 연구에 앞장 선 현용준 박사는 필사자와 무가집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이 무가집은 심방들이 굿을 가르치기 위해 교습서로 만든 것으로, 필사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해 손질하여 고서처럼 꾸며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 박사는 그러나 “「풍속무음」은 본풀이 내용을 자상하게 기술하고 있고, 다른 이본과 다른 점이 많아 학술자료적 가치가 높고 ‘버드남본’과 ‘영천이목사본’은 다른 무가집에도, 현재 굿 노래에도 없는 본풀이여서 주목된다”고 해제에서 밝혔다.

 서문을 쓴 문충성 시인은 “제주도 무가는 그리스나 희랍의 신들이 연애하고 싸우며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심술 많고 잘 토라지고 그래서 횡액을 주는 신들의 이야기로 절해고도 척박한 섬땅에서 양반들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토박이 기층민인 농어민들의 꿈꾸던 삶의 노래다”고 평가했다.

 울고 웃는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난관을 극복해 가는 제주민중들의 삶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300부 한정본. 값 3만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