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철 교육문화체육부 차장

2016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는 태평양 폴리네시아 섬들에 전해 내려오는 마우이 신화가 등장한다.

그중 '테피티'는 망망대해에 온갖 섬과 살아있는 생명을 창조한 여신이다. 반신반인 영웅인 마우이가 테피티 여신의 심장을 훔치려다 실패해 여신의 심장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마우이는 섬에 영원히 유배된다.

심장을 빼앗긴 여신은 괴물로 변하고, 세상에는 생명을 해치는 것들이 퍼져나가면서 코코넛이 시들고 물고기도 잡히지 않는 위기를 맞게 된다. 세상이 병들기 시작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모투누이섬 추장의 딸 모아나가 심장을 되찾아 테피티에게 돌려주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거대한 여신은 세상에 넘치는 생명력을 선물하고, 옆으로 편안하게 누우면서 그대로 하나의 섬이 된다.

이야기가 상징하는 것을 놓고 보면 제주섬 역시 모투누이섬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개발을 이유로 창조여신 설문대할망이 깃든 자리들이 하나 둘 파괴되고, 그곳의 이야기들도 잊혀가고 있다. 오직 인간만을 위한 개발이 자연을 병들게 하고, 결국 인간의 생존도 어렵게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진·영상·퍼포먼스 작가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불휘공 프로젝트'가 15일부터 진행하는  '사남굿 설문대'도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설문대할망의 마지막에 대한 해석도 기존보다 보편적인 시각을 갖는다. 

설문대할망이 명주 한 동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육지까지 다리 놓기를 중단하고 물장오리의 산정호수 속으로 사라진 것은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거인 전설·신화처럼 창조의 소임을 마친 뒤 죽음을 통해 자신의 몸을 대지와 자연으로 변신시켰다는 것이다. 죽음이 아닌 변신으로 '사체화생(死體化生)' 모티프라고도 한다.

이에 따르면 제주섬은 여신이 화한 성스러운 땅이다. 그 섬을 파헤치는 것은 곧 창조주의 육신을 도륙하는 것을 넘어 영성의 부활을 막는 파멸의 행위라는 위기의식이자 인식이다.

난개발로 훼손돼 가는 제주, 물질만능의 시대에 설문대 전설지를 찾아 떠나는 그들의 행보에 담긴 의미가 자못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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