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제주관광대학교 기획부총장·논설위원

올해가 저물고 있다. 무술년 한해는 국내·외적으로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또한 원전문제와 북한 핵문제, 무역전쟁과 이데올로기문제 등 사회적으로 참 혼란스러운 해였던 것 같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돌아볼 새도 없이 한해를 보내다보니 내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다. 그래서인지 어서 빨리 한해가 지나가 주기를 기대한 생각마저 가졌는지 모르겠다. 

한해를 보내며 잠시 묵상에 잠겨본다. 올해는 과연 전반적인 흐름이 긍정적이었나. 아니면 부정적이었나. 사회가 정의로워졌나. 모두 잘사는 사회가 되었나. 또 그 정책시스템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선진화되었나 생각해 보게 됐다.

사회변화의 흐름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나만의 퍼지논리(Fuzzy Logic)로 평가하자면 그 기준은 언론과 여론의 방향인 것 같다. 지난 한해는 특히 촛불정권의 정책기조 변화에 관한 뉴스가 많았던 것 같다. 신문에는 과거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1면을 장식하고, 몇몇 정치인들의 행위가 끊임없이 기사거리가 됐다. 기사내용을 통해 우리는 당사자의 비인간적인 팩트를 알게 됐고 인간적인 연민도 읽을 수 있었다. 

공정위의 적발과 미투운동으로 드러난 일부 부도덕한 기업인과 문학인, 예술인을 비롯한 사회저명인사들의 뉴스거리로 우리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었고, 이러한 고발과 커밍아웃이 서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러나 반면에 지난 한 해 동안 갈팡질팡한 정책으로 우리를 답답하고 막막하게도 만들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경험과 경력이 의심되는 사람이 관련없는 직무의 장이나 임원이 되는가 하면, 검증되고 공론화되지 않은 정책이 신선함과 혁신을 핑계로 우리의 삶을 당황스럽게 했고, 산업정책 기조의 논란이 우리 경제와 산업계획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과거사안을 다시 꺼내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어 이를 해결한다고 온 사회가 들썩거리고, 촛불정신에서 멀어졌다고 주장하는 민노총을 비롯한 노조는 정규직 전환문제로 정부, 기업과 또 다른 갈등을 낳기 시작했다. 

잘못된 과거를 정리하고 바로 잡는 일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너무 많은 분야에서 너무 많은 사안들을 경중에 관계없이 한 번에 쏟아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모든 것이 지나치면 그 효과가 희석되게 마련이다. 맛있는 것도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고 운동도 너무 심하게 하면 오히려 병이 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 변화와 과거청산도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사회적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일을 정의롭게 밝히고 청산하고 정리하는 일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옳은 것이 있으면 그른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만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작금에 이뤄지고 있는 사안들이 역사를 되돌리거나 보복성의 다크 역지사지(Dark 易地思之)로 인식되지 않도록 균형있는 시각, 그리고 배려와 용서를 전제로 한 혜안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를 위해 의지보다는 열정이 있는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의지는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임에 반해 열정은 이루어가는 과정에 최선을 다한다. 의지는 목적을 위해 조작될 수 있지만 열정은 조작될 수 없다. 의지는 머리에서 시작되는 반면 열정은 가슴에서 출발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새해,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한 해가 아니라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열정이 있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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