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정치부 부국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특정한 노래 가사가 머릿속을 맴돌아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금지곡'리스트가 화제가 됐었다. 이른바 '귀벌레(Earworm) 현상'으로 대표되는 단조로운 멜로디에 중독성 강한 후크송들이 리스트에 올랐다. 현재 상황이나 심리 상태를 그린 듯 한 가사 역시 귀벌레로 작용한다.

올 한해 전 세계 음악팬들을 열광시켰던 방탄소년단이나 듣고 한 번도 안 따라 부른 사람이 없다는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 같은 보이그룹 사이에서 상큼 발랄한 이미지로 팬덤을 형성했던 걸그룹의 노래 하나가 요즘 제주 사회에서 귀벌레로 맹활약 중이다. 트와이스의 '시그널'이다. 가사의 절반이 "사인(Sign)을 보내 시그널(Signal) 보내"다. 이 정도면 몇 번 듣기만 해도 저절로 흥얼거릴 정도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원래 가사는 마음에 든 이성을 향한 것이지만 현재 제주 상황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근데 전혀 안 통해/눈빛을 보내 눈치를 주네/근데 못 알아 듣네/답답해서 미치겠다 정말…"

△곳곳서 지방소멸 신호

올 한해 제주에서 나온 경제 지표나 통계 자료들이 보내는 '신호'가 심상치 않다.

국가통계포털의 인구동향조사를 보면 올 들어 8월까지 출생 등을 통한 자연증가(출생아 수-사망자 수)는 700명에 그쳤다. 읍·면과 원도심에서 인구가 늘지 않고 고령화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예들 들어 지난해 추자면에서 태어난 아이는 2명이었지만 전체 주민 중 노인인구 비중이 32.4%나 된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제주 43개 읍·면·동 10곳 중 3곳(30.2%)은 소멸위험 지역(소멸위기지수·한 지역의 가임여성인구(20~39세) 수를 같은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값 0.5 미만)으로 분류됐다. 제주 평균 소멸위험지수는 올 6월말 현재 0.86으로 전국 평균(0.96)을 밑돌았다.

농어가 사정은 더 심각해 제주 농가 소멸위험지수는 2010년도 0.45에서 2017년 0.22로 51% 감소했다. 이 상태라면 2025년 쯤에는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제주의 순유입인구 증가세는 지난 2010년 시작해 2013년 7823명,  2014년 1명1112명, 2015년 1만4254명, 2016년 1만4632명 등 증가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해 1만4005명으로 머뭇거리기 시작해 올 들어 10월까지 8547명까지 위축됐다.

제주연구원의 '제주 인구소멸지수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도 이런 부분을 우려했다. 자연 인구 증가가 완만한 감소세를 이어가는데 이어 순유입인구 영향으로 탄력을 받았던 사회적 인구 증가세가 둔화하는 부분을 짚었다. 지난해 제주 순이동인구(1만4005명)의 34.1%(4776명)를 차지했던 25~39세 청년층이 올 들어 전출로 돌아선 부분을 주목했다.

일자리 문제는 '청년'에 국한하지 않는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여성·40대 남성이 고용시장을 빠져나가고 주거 부담이 계속해서 가계 경제를 짓누르는 현실에 지역 경제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소상공인과 골목상권 경기마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양극화·사회갈등 등 고민 

문제는 더 있다. 읍·면·동간 편차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는데다 사회 갈등 문제가 회복은커녕 계속해서 양산되는 분위기까지 이대로 괜찮겠냐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겠다고 이런 저런 정책이 나오고 내년 관련 예산을 늘린다는 자료가 나오고 있지만 '잘되면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먼저 나온다.

아이돌 특유의 톡톡 튀는 리듬감에 율동을 곁들여도 어색하지 않을 노래지만 흥얼거림은 이내 타령조로 바뀌고 너무 들어 늘어진 테이프마냥 축축 처진다. 지금 제주가 보내는 시그널은 '사람을 붙잡기 어렵고, 키우기는 더 어려운 현실'이다. 급한 대로 도움을 요청하는 곳만 살피는 것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의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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