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새해인사말로 '만사형통(萬事亨通)의 글귀'를 사용한다. 거기에는 매사가 순조롭게 이뤄진다는 뜻이 담겨있지만 역경을 극복해야 하는 실제상황과는 다르다. 고해(苦海)로 표현하듯 인생역정을 거친 바다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순풍(順風)에 돛을 단 것처럼 순조로운 항해와 다른 것이 인생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귀여운 자식일수록 온실(Warm House)밖으로 내보내라라는 오늘날의 명언도 같은 맥락이다.

온실은 따스하고 안온한 내실(內室)과 같지만 온실 밖의 로지(露地)는 차갑다. 들판의 경우 어떤 가리개도 없음으로 무차별한 비바람을 피해갈 방법도 없다. 겨울철에는 동사(凍死)를 불러오는 한파까지 몰아침으로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이나 자연에 취약한 것이 인간존재임으로 이를 보완하는데 주력해온 흔적으로 문명(文明)은 남아 있다.     

오늘의 과학시대는 난대(暖帶)작물인 감귤도 북쪽에 놓인 반도부에서 재배하고 있다.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지혜의 산물이며 역경(逆境)을 극복해온 모습이다. 인간을 야생동물과 차별해온 것도 이런 정신에 무게를 둔 영장(靈長)의 속성과도 관계된다. 세찬 비바람과 한파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 선사시대부터 동굴을 은신처로 삼아온 것도 같은 맥락의 모습이다. 

동굴은 자연 그대로 조성된 것이지만 제약이 큰 주변여건에 대하여 방패막이로 기능해왔다. 이것이 혈거(穴居)이며 선사시대주거(住居)지로 활용해온 근거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은 인위적 가옥조성에 눈을 돌렸음으로 자연에 의존하기보다 가변성(Possibility)에 무게를 두어왔다. 이것마저 평면형보다 입면(立面)구조에 주력해왔음으로 오늘의 고층건물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가변(可變)성마저 만능주의에 젖어들며 삼재지도(三才之道)까지 외면해온데서 혼선을 빚게 만들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결합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원리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한계선에 인간도 놓였기 때문이다. 하늘은 시운(時運)을 말하고 땅은 주변여건을 말하며 사람은 능력차를 인정해왔다. 이것이 운명을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한때는 사주(四柱)와 관상의 등장하며 운명론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세상사임을 말하고 있다. 노력과 성공이 등식이라면 승승장구(乘勝長驅)의 표현처럼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취를 안겨줄 것이 당연하다. 

율곡은 13세에 시작한 진사(進士)를 시작으로 아홉 번에 걸친 장원급제로 이어졌다. 이것이 구도자원(九度壯元)의 역사기록이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사게 만들었다.

어머니(신사임당)에게서 물려받은 천재적 두뇌, 이를 개발한 후천적 교육효과였다. 이를 뒷받침하듯 오늘의 과학시대에도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에 근거하여 사람마다 능력차를 인정하고 있다. 김시습도 천재성에서 율곡과 닮았다. 하지만 시운(時運)이 변수가 되어 불운을 겪게 됐다. 사육신(死六臣)을 낳게 된 불행한 역사현장을 목격하면서 책을 불사르는 한편 입산(入山)으로 이어져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만을 남겨놨기 때문이다.

그만큼이나 사회조건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안중근 의사의 공덕비에는 시조영웅(時造英雄)이란 글귀가 나온다.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시대조건이 영웅을 만들어온 것을 의미한다. 평화와 안정이 계속되었다면 의사배출이란 생각할 수 없게 됐다. 그럴 정도로  인간운명도 하늘의 운세, 주변조건과 인간능력에 걸친 삼재(三才)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눈길을 모으고 새해를 맞이하며 부푼 마음을 진정하는 것도 필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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