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장기 미제사건 진실 밝혀지나

지난 5월 영장 기각 이후 7개월만...섬유 미세증거 보강 집중
경찰 기소의견 송치 방침...피의자 혐의 부인 법정 공방 전망

2009년 제주에서 발생한 장기 미제사건인 어린이집 보육 여교사 살인사건 피의자 박모씨(49)가 사건 발생 9년만에 구속됐다. 지난 5월 구속영장 기각 이후 7개월만에 박씨를 구속 수사하게 되면서 경찰의 수사도 탄력을 받게 됐다. 하지만 피의자가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데다 간접 증거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기소 이후 혐의 입증을 놓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전망된다.

△사안 중대성·도주 우려

제주지방법원 임대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1일 오후 3시 강간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박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 이날 오후 7시50분 영장을 발부했다.

임 부장판사는 "사안의 중대성과 도주 우려가 있다. 영장 기각 이후 범죄혐의를 소명할 증거가 추가된 점을 고려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2009년 택시 운전을 했던 박씨는 그해 2월 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자신의 택시에 탑승한 보육교사 이모씨(당시 27·여)를 성폭행하려다 목 졸라 살해하고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당시 박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결국 풀어줬다.

9년만에 수사를 재개한 경찰은 올해 1~3월 동물사체실험을 통해 사망시점을 실종일인 2월 1일로 특정하고, 과거 자료 분석과 추가 증거를 확보해 지난 5월 16일 경북 영주에서 박씨를 검거했다.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으로 검찰은 5월 17일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이튿날 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다.

영장 기각 이후 경찰은 증거 보강에 집중, 이달 18일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고, 검찰이 같은날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은 지난 19일 법원으로부터 구인장을 발부받아 21일 대구에서 구인장을 집행, 박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미세섬유 결정적 역할

지난 5월 한 차례 고배 이후 두번째 시도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배경에는 추가 보강한 섬유 미세증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피의자와 피해여성의 물리적 접촉을 증명할 수 있는 섬유 미세증거를 다량 확보하고 과거 CCTV 화질을 보강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영상분석연구소 등으로부터 정밀 재감정과 재분석을 50여차례 진행하는 등 정황증거의 증명력을 보강했다.

특히 박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피해여성의 외투와 치마, 가방, 신체 부위에 묻은 박씨의 옷 미세섬유와 박씨가 운전했던 택시의 트렁크, 운전석, 뒷좌석 등에서 발견된 이씨의 미세섬유를 추가 확보해 제출했다.

피해여성의 옷 미세섬유와 발견 지점이 늘어난 만큼 박씨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2010년 청주지방법원의 강간치상 재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교차된 섬유를 증거로 채택한 판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법원은 직접 증거는 없지만 추가 확보한 정황 증거로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 사건 발생 9년만에 경찰은 피의자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은 "피해여성은 발견 당시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옷 안 어깨 부위에도 박씨의 옷 섬유가 발견됐다"며 "피해여성의 사체에 저항 흔적이 남아 있었고, 미세섬유가 서로 묻거나 떨어져 나가려면 웬만한 물리적 접촉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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