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남 정치부 차장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하이인리 법칙'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930년대 미국의 한 보험회사 감독관인 하이인리가 보험사고의 유형들을 조사하다 발견한 법칙이다. 한 건의 대형사고가 터질 때까지는 비슷한 29건의 경미한 사고들이 먼저 있고, 그 이전에는 300건 이상의 아주 가벼운 징후들이 먼저 발생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하이인리 법칙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던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동양의 대표적 고전인  「주역」에서는 "서리를 밟으니 굳은 얼음이 이를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서리는 곧 얼음의 징후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그런 상태에 이르기 전에 미리 방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에는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은 하루 아침저녁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는 작은 것들이 조금씩 쌓인 결과이다"는 말로 이 구절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조선 인조때 학자 홍만종의 「순오지」에 나오는 말이다. 굿이 끝난 뒤에 장구를 치는 것은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과 같고, 말을 잃어버린 후에는 마구간을 고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중국 전한시대 유향이 편찬한 「전국책」에 나오는 고사로 망양보뢰(亡羊補牢)라는 말이 있다. 양을 잃고 나서야 우리를 고친다는 뜻이다.

지난 18일 강릉의 한 펜션에서 고등학생 10명의 사상자를 낸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 정부는 동절기 안전점검 기간을 연장해 민박 등 농촌관광시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매달 가스누출 점검을 통해 환기 상태와 배기통 이음매 연결 등을 확인한다. 일산화탄소 감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 개정도 추진한다. 

사소한 이상함도 간과하지 말고 점검해야 한다. '사후약방문' 만큼이라도 제대로 해야 제2, 제3의 강릉펜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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