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별법 개정안 조속 처리

문재인 대통령 추념사 통해 "중단·후퇴 없다"강조 불구 불발
배보상금 규모에 정부 난색…현안 밀려 상임위 검토도 못해
진상규명 현실적 뒷받침 절실, 연대·선택·집중 통한 접근 주문

제주에 '다시, 봄'이 온다. '70주년'이란 큰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컸다.
지난해 제70주년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며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희생자·유족 신고와 유해 발굴 재개 등 제주4·3을 우리나라의 역사로 인정하는 작업이 정주년의 의미를 새겼다. 전국화·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도 기울여졌다. 하지만 '제주에 봄이 오고 있다'는 외침에 대한 기대는 아직 진행형이다. 다시 1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 71주년 중심 화두로

'4·3 70주년'의 과제로 △제주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통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새로운 단계 구축 △제주 4·3의 '정명'(正名)찾기와 세대 전승 △배·보상 문제 공론화 △4·3 문제에 대한 미국의 책임 문제 △4·3 수형인 문제 해결 등을 제시했다.

4·370주년 기념사업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했고 전국 단위의 4·3알리기 작업도 이뤄졌다. 그럼에도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4·3특별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4·3특별법 개정안의 의미는 특별하다. 2000년 제정 공포된 4·3특별법은 4·3의 명예회복과 진상조사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4·3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에 대한 법적근거나 4·3당시 이뤄진 군사재판 무효화 등 진상규명을 위한 현실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내용을 내용을 보완한 개정안은 지난 2017년 12월 19일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 을)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강창일 의원(〃, 제주시 갑)과 권은희 의원(바른미래당, 광주 광산구을)도 제주4·3특별법 전면·일부 개정을 내용으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4.3 및 희생자를 왜곡하거나 비방하는 것을 금지하고 국가차원의 교육을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도 공동 발의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관련 공약인데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개정안 통과에 대한 정부차원의 협력을 공식 언급했고, 여야 정치권도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유족·희생자들이 거리로 나와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고 국정감사로 제주를 찾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청원서까지 전달했지만 답은 오지 않다.

1조 8000억원대로 추산되는 4·3 배·보상금을 두고 정부까지 난색을 보였다. 중요 현안에 대한 여야간 대립 속에서 4·3특별법 개정안은 상임위 법안 심사에서 4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이르면 오는 2월 심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확신하기는 어렵다.

△'국회 바라기' 답없어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제주4·3 완전 해결의 시작점이다. 제주4·3의 의의를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 4.3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법적 과제들을 풀 수 있는 단초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오는 6월 UN본부에서 4·3심포지엄이 열릴 예정에 있는 등 4·3 진실 규명을 위한 논의가 전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기대도 높이고 있다.

제주도가 지난해부터 2021년 '4.3기록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목표로 채비를 시작했고 이르면 올 상반기 중 문화재청과 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이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다. 지난해 국회만 바라봤던 상황을 올해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안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제주만의 문제로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적한 과제를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주문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작업 등과 연대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여순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와 국방부가 민간인의 억울한 희생을 인정한 사례지만 2001년부터 네 차례 국회에서 발의만 되고 무산됐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발생했다. 전남 여수 주둔 14연대가 제주 4·3 진압 출동령을 거부하며 정부 진압군과 맞서는 과정에서 당시엔 여수와 순천을 포함한 전남 동부권 주민 1만 1131명(1949년 전남도 발표)의 목숨을 앗아 간 비극으로 알려졌다. '여수순천반란사건'으로 불리다가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를 2043명으로 확정·보고하면서 명칭을 바꿨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란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희생자 등의 명예회복을 배·보상에 치우쳐 접근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있다. 야당은 물론 정부를 설득할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충분한 공론작업과 이해를 통해 4·3 완전 해결을 위해 풀어야 할 문제를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지난해 제주지방검찰청은 제주4·3 당시 폭도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3 수형인 재심사건 재판에서 법원에 공소 기각을 요청했다. 70여년 전 군사재판이 범죄 사실을 특정하지 못한 채 이뤄진 불법 재판임을 인정한, 사실상 무죄 구형이다.

그러나 아직 행방도, 시신 수습도 하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다. 제주4·3 목포형무소 수형생존자 및 유족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4·3희생자 결정에도 명예회복 작업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4·3해결 과정에서 가장 미흡한 점으로는 44.7%가 진상규명을 꼽았다. 수형인명부 내용과 관련해 80.2%가 인정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수형인 명부 폐기'에 대해서는 강한 반대 (75.7%)입장을 보였다. 그 이유로 4·3과 관련한 유일한 공식 기록(60.1%)이자 피해·가해 여부를 가리는 자료(25.0%)라는 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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