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모난 돌을 한자로 표현하면 각력(角礫)이 된다. 모서리가 상징성을 띨 만큼 날카롭고 예리(銳利)한 모습이다. 서귀포 근처에는 각수바위가 등장하는데, 예리한 봉우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모양새는 암석마저 견고(Solid)한 성질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제주도에 일반화된 원추(圓錐)형화산과는 암석은 물론, 외형에서도 다르다. 사람의 눈에 비쳐지는 모양새에서 둘이 확연하게 다른 것도 내면에 담겨진 구성암석과 관계된다.  

신비한 것은 예리한 외형을 드러내는 점에 있다. 서울 북쪽에 자리한 북한산은 삼각산의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3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서 장검(長劍)처럼 날카롭게 솟아오른데 따른 것이다. 이런 모양새에 기인한 것인지, 한양을 조선왕도로 선정할 때, 북한산을 조종(祖宗)산으로 여기며 중시해왔다. 이런 신비경에 근거해 북한산에는 도선사를 비롯하여 50여개의 산사(山寺)들이 세워져 있다. 예봉(銳鋒)을 드러내는 삼각(三角)산을 수행터전으로 삼아온데 따른 것이다.  

한라산 영실은 성립조건에서 다르지만 신비한 기암들이 많은데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모양새를 오백장군에 비유하며 신앙대상으로 여겨왔음으로 신비함에서 삼각산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바다로 침범하는 왜구(倭寇)에 대비해 수호를 위한 염원까지 담아내며 주민들은 지극정성을 다해왔음으로 신앙대상이 되어온 증거다. 하지만 과학이론을 적용할 때 침식(Erosion)이 덜된 단계에 놓인 암석일 뿐이다.  

이보다 발전된 침식단계의 경우 원정봉(Round Peak)으로 표현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예리한 봉우리마저 깎이면서 모서리들이 무뎌진데 따른 것이다. 날카롭고 예리한 산세들이 침식과정을 거치며 마모(磨耗)와 더불어 둥글게 변해온데 따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특한 인간의 경우 자연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원리를 일상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지혜(Intelligence)의 원천으로 삼아온 점에 있다.  

원융무애(圓融無碍)의 글귀가 나온 것도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융통성을 보일수록 장애가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인간사회에서 높게 평가하는 것은 둥그런 모양새에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나온 배경과도 관계되는데 예리한 모서리가 손상받기에 알맞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모난 돌의 경우 외부저항을 받기에도 알맞다. 이런 돌멩이들은 외진 곳에 흔하게 존재함으로 이웃과 교섭이 없는 산간벽지주민의 삶과도 유사(Similarity)성을 갖게 된다. 

이것은 순박함에서 장점이 있더라도 소통(疏通)을 중시하는 인간사회에서 허점이 된다. 사람은 영장동물속성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문화를 앞세우며 교류를 통해서만 성숙단계의 세련미를 발휘할 수 있다. 세련미는 거센 물줄기와 파도에 의해서 고된 연마(硏磨)과정을 거쳤을 때에 얻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해(苦海)로 표현되는 인생과도 합치되는 모습이다. 

제주도는 순수한 자연으로 가득한데다 유배(流配)지의 전통을 갖고 있다. 여기에 영향을 받았음인지 주민기질도 단순하고 충직함으로 가득차 있다. 굳이 비유한다면 날카로운 봉우리이면서 모난 돌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것이 외부세계와는 이질(異質)감으로 다가와 충돌소지를 갖는 한편, 비협조적인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시대추세는 이와 반대로 융합(融合)을 위한 협조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을 인정하면서 융합을 이루는 원만한 처신이야말로 필수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각(銳角)의 모서리를 떠올리고 냉정한 비판적 자세를 갖추면서도 둥근 바위처럼 세련미를 겸비하는 '원융의 모습'이 필요하다. 또한 과거와 다른 시대상의 도래(到來)를 의식하고 알맞게 변화하는 자세를 갖추며 이를 실행해 나갈 때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