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재판' 등에 직접 관여 정황…'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도
檢, 최종 승인·지시했는지 중점조사할 듯…梁 "재판관여 결단코 없어"

 

검찰은 양승태(71)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재판에 불법으로 개입하고 특정 성향의 판사를 사찰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데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나 승인이 있었다고 본다.

양 전 원장이 받는 범죄 혐의는 검찰이 지난해 11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개략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44개 범죄사실과 관련해 임 전 차장 등과 범행을 공모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가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임 전 차장 등에게서 직접 관련 내용을 보고받거나 지시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차장 기소 후 검찰의 보강 수사가 이어진 점을 고려하면 양 전 대법원장이 받는 범죄 혐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받는 핵심 혐의 중 하나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이 혐의를 임 전 차장 공소장의 첫 번째 범죄사실로 적시했다.

대법원이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해 놓고서 이듬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이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자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검찰은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관계자를 수차례 독대하거나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시하는 등 양 전 대법원장 본인이 재판에 직접 개입한 정황을 확보했다.

양 전 원장은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공작 사건 ▲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에서도 임 전 차장 등과 공모해 관여한 의혹을 받는다.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수사 정보를 빼내고 영장 재판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내거나 2015년 문모 당시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 사실을 검찰로부터 통보받고도 징계절차를 밟지 않은 데 최종 책임자로 관여했다는 의혹도 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사법행정이나 특정 재판에 비판적인 의견을 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생산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혐의도 있다. 검찰이 확보한 이들 문건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자필서명이 기재돼 있었다.

그는 이밖에 ▲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 법관 사찰 ▲ 비자금 조성 등 세 차례 법원 자체조사와 검찰 수사로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부분 연루돼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62)·고영한(64) 전 대법관을 최근 비공개로 다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을 상대로 임 전 처장이나 두 전직 대법관으로부터 재판거래 등과 관련한 보고를 받거나 이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는지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작년 6월 이후 7개월 가까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해왔다. 이 과정에서 최종 책임자로서 양 전 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다양한 진술과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법원은 검찰이 지난달 청구한 박·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임 전 차장과의 공모 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는 이유로 모두 기각한 바 있어 혐의 입증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두 전직 대법관의 공모 관계부터 입증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법원이 내놓은 상황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 관계가 인정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양 전 원장도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하기 전인 작년 6월 1일 자택 인근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재판에 부당하게 간섭·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나 재판에 성향을 나타낸 당해 법관에게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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