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철 교육문화체육부 차장

'방기곡경(旁岐曲逕)'은 '곧은 길을 놔두고 샛길(旁岐)이나 굽은 길(曲逕)로 간다'는 뜻으로 정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방법이 아니라 꼼수나 억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비유하는 사자성어로 사용된다. 

율곡 이이가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군자와 달리 소인은 제 이익을 위해 제왕의 귀를 막아 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제주문화예술계를 사자성어로 풀어본다면 아마도 이 말이 가장 그럴듯할 것이다.

제주 예술가들을 위한 실질적인 사업을 맡는 제주문화예술재단과 제주를 대표하는 미술관인 제주도립미술관 모두 제주도감사위원회 감사 결과 '기관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전임 수장들의 무리한 사업 추진의 결과물이었다.

도립미술관은 비엔날레를 전후한 시기 특정감사에서 기관 경고와 함께 23건에 대한 시정·주의·권고 등 처분을 받았다. 전 도립미술관장 등은 업무상 배임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제주문화예술재단도 지난 9일 발표된 도감사위 감사결과 지난해 재밋섬 부동산 매입을 부적정한 방식으로 추진해 기관경고와 함께 관련자 경고·징계 처분을 받게 됐다.

바로 다음날 이경용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장이 "제주아트플랫폼 조성사업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계약 당사자 간 신속한 협의를 통해 도민 혈세 손실 최소화를 주문했다.

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가 내달 19일부터 열리는 임시회에서 이번 감사 결과에 따른 재단의 후속조치 등을 다룰 예정이어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신임 재단 이사장과 미술관장에게는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란 말처럼 임기 시작부터 난제들을 맞게 됐다.

다행인 것은 신임 이사장이 취임부터 현장 예술인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소통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도립미술관장도 전문가·도민 토론으로 제주비엔날레의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 자체가 예술가의 일방적인 표현이 아닌 대중과의 소통이란 점에서 문화예술은 어느 분야보다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형식적 절차를 넘어 폭넓게 의견을 듣고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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