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생 교육문화체육부 부국장

지난해 문화계 등 사회전반에 퍼졌던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새해 벽두부터 체육계로 번지고 있다. 체육계는 심석희의 폭로를 계기로 '미투'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심석희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도한 조재범 코치로부터 수년 간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폭로한데 이어 유도 유망주였던 신유용도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 숙소에서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 2015년까지 수십 차례 반복됐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렇듯 일부 선수들이 피해 사실을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 놓으면서 체육계 성폭력 문제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특히 14일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 체육계 폭력·성폭력 피해 증언에 대해 입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연이은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증언은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져 온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드러난 일뿐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히 조사·수사하고,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체육계의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운동부가 되면 초등학교부터 국가대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합숙소에서 보내야 하는 훈련체계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 살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성폭행 피해 사실에 대한 엘리트 선수들의 폭로를 계기로 주무부처는 물론 체육계를 대표하는 대한체육회의 조직 운영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요청했다. 회원종목단체의 (성)폭력 조사와 징계의 자정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한체육회도 15일 한국 체육의 적폐를 드러낸 가혹행위와 (성)폭력 근절 실행 대책을 발표, 모든 사건의 조사를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기로 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체조팀과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를 지낸 래리 나사르는 1990년대 초부터 2016년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300명이 넘는 여자 체조선수들을 성추행·성폭행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나사르는 30년 동안 치료를 빙자해 여자 체조선수들을 강제로 추행하고 성폭행했다. 잊혀질 것 같았던 이 사건은 2016년 전직 체조선수 레이철 덴홀랜더가 폭로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나사르의 추문은 그해 9월 미국 일간지 인디애나폴리스 스타의 보도로 알려졌다. 또한 전·현직 미국 대표선수 150여명이 나사르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조딘 위버를 비롯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체조계 여왕인 시몬 바일스도 피해자 중의 한 명이며 나사르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한  여자 체조선수는 350명에 이르렀다. 2017년 연방 재판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은 나사르는 2018년 100여명의 체조선수의 잇따른 증언에 최대 300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체조협회는 미국올림픽위원회로 협회 자격을 박탈당했고 막대한 보상금에 파산을 신청하는가 하면  미시간주립대 역시 합의금 5억달러를 감당해야 했다. 

최근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도내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치는 한 지도자가 폐암 2기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 지도자는 자신이 폐암에 걸린 줄도 모르고 어린 선수들을 길러내는데 온 힘을 다했다. 지난해말 건강검진 CT촬영에서 폐암을 발견해 다음 주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30여 년 동안 이 지도자는 줄곧 선수 육성에 몸 받쳤다. 특히 이 지도자와 함께 한 여성 지도자 역시 선수들을 가족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선수들을 차량을 이용해 새벽부터 집에서 경기장으로, 또 학교로 데리고 다니는 일을  반복했다. 그만큼 애착이 있었기에 아시안게임 제주출신 2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저력도 보여줬다.  '체육계 미투'로 들끓고 있는 이면에 선수들이 올바르게 자라나도록 지도하는 도내의 수많은 열정을 가진 감독과 코치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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