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삼 UNITAR 제주국제연수센터 소장

제주도의 도로망은 육지보다 월등히 양호하게 조성돼 있다. 제주와 서귀포를 종축으로 연결하는 5·16도로와 1100도로를 시작으로 제주의 미래 비전을 담아 이름 붙여진 평화로와 번영로가 고속화도로로서 시원하게 뚫려 있다. 아울러 산간지대를 둘러싸는 산록도로와 중산간도로, 환상적인 바다 풍경으로 제주도다운 운치를 자아내는 일주도로가 지역 간 소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남조로, 대한로 등 지방도들이 제주도의 동서남북을 촘촘히 잇는 혈맥이 돼주고 있다.

그렇지만 제주도는 자가차 없이 생활하기가 다소 불편한 지역으로 여겨진다. 차량교통과 철도교통이 연계 가능한 육지의 교통체계에 비해 태생적으로 육상교통이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철도교통이 들어서지 못한 것은 지형 및 지질 조건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제주시와 서귀포 사이를 한라산이 가로막고 있어 직선 철로 부설이 어렵고, 화산섬이라 현무암으로 구성된 암반층으로 인해 지하철 공사도 여의치 않다. 여객을 대량으로 수송할 수 있는 전철이 없어 차량에 수송분담률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불편은 시내 지역에 주차공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점이다. 시내에서 약속이라도 있으면 주차공간이 있는지 여부가 가장 신경이 쓰인다. 특히 제주시에 도 전체 인구의 70%가 몰려있어 도심 지역의 경우 서울보다도 열악한 환경이다. 서울시의 주차장 확보율이 130%인데 반해 제주도는 97%에 그친다. 게다가 제주시 등록차량만 해도 28만대인데 제주시 내 주차장은 25만면, 동(洞)지역으로 한정하면 20만면에 불과해 태부족이다.

제주도 인구가 68만명인데 도내 자동차 수는 38만대로, 인구 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1위다. 육지 같으면 웬만해선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에도 제주에서는 일단 자가차를 끌고 나오고, 관광객들까지 으레 렌터카를 이용하고 있으니 교통난, 주차난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제주도청이 버스 우선차로제를 도입해 대중교통 개선에 애를 쓰고 있다. 찬반 대립이 있었지만 이제는 제도 정착 단계에 이르러 버스 이용객이 다소 늘고 출·퇴근 시간대에 교통체증이 어느 정도 완화된 듯하다. 제주도의회에서도 교통유발부담금제, 차고지증명제 조례 개정안이 심사되는 등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시·도에서는 트램을 비롯한 경전철 도입을 통해 대중교통체계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제 제주도 고속전철 건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전에도 관련 논의가 없지는 않았지만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서 무산됐다. 그러나 갈수록 교통난이 심화되고 체류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미래 교통수요를 감안해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고속전철이 환경에 부담을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피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중국 상하이의 자기부상열차(Maglev)를 지속가능발전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거론한 바 있다. 대중교통수단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예비타당성조사 및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제주도 환경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 도입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속전철 시공에 앞서 토지 수용 건이 큰 장애로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평화로와 번영로를 조금씩 확장해 철로를 부설한다면 예산도 덜 들이면서 공사기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와 서귀포 사이에 중간역을 2개 정도 설치하고 버스 노선과 연계하면 도민들과 관광객들의 이용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고속전철은 제주시 도심에 밀집된 인구의 분산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전철역 주변에 대형 주차장을 마련해 놓으면 출·퇴근 시간 단축 효과가 촉진될 것이다. 30~40분 정도에 출·퇴근이 가능해지면 굳이 비싼 집세를 내가면서 제주 시내에 몰려 살 유인이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제주 도심이 앓고 있는 인구 과밀 문제가 자연스레 해소되고 도심 재생 사업도 활발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제주도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면서 지역경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속전철 도입은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사업이기에 당장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진행 과정에서 많은 난제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철이 가져올 효과가 교통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도시계획, 관광, 경제로까지 파급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미래를 위한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제주도 개발 종합계획의 일환으로 선행돼야 하는 필수적 과정일 수 있다. 섬이라는 제주도의 특성을 살리면서 환경친화적인 대중교통체계를 구축하는 데 지혜를 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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