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 253명이 5박 6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대한항공 전세기를 타고 제주 공항에서 직접 평양 순안공항으로 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또 하나의 변화를 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가 있었고, 또 이를 통해 제주도가 남북한 화해-협력의 가능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는 사명까지 갖는 게 아니냐는 설렘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체류일정은 이러한 기대를 허물어 버렸다. 사전 일정 없이 그날그날 제공되는 일정은 비효율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253명의 인원이 움직이는 데 아침저녁으로 그때 그때의 일정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험난한 21세기를 헤쳐 나가려고 하는 지 걱정이 태산같았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가 언제까지나 그래야 할는지 생각하니 답답했다.

북한의 현실이 답답하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제주도를 대표하고 있다는 책임의식과 자긍심으로 임했다. 통상적인 해외관광과는 다른 북한방문은 그것이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로 여겼기 때문에 더욱 자중과 아량을 보이고자 했다. 북한을 접하는 시간이 많고 길어질수록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인하게 되었고, 그런 만큼 체제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어떻게 하면 북한도 우리처럼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21세기 세계화 흐름에 발맞춰 평화의 섬과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해 나가고 있는 제주도. 이와 대조적으로 여전히 ‘강성대국’과 ‘자립갱생’을 외치며 체제안정에 골몰하고 있는 북한.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하자고 외치면서 여전히 100년 전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이렇게 이질적인 두 세계의 만남은 부자연스럽고 일면 위험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그러한 위험성이 북한에 더 있다는 데 북한의 고뇌가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남과 북은 하나임을 확인하고자 우리는 만났다. 하나의 민족끼리의 만남이기에 서로 이해하려고 했고 조금이라도 잘 해주려고 했다. ‘고향의 봄’노래를 부를 때 찡하는 감정과 글썽이는 눈물로 우리는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 하나가 되고자 했다. 이렇게 조그마한 만남이 모아져 북한이 보다 더 개방과 개혁으로 나서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답답함과 애절함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방북 제주도민들은 자신감과 담담함에서 돋보였다. 주체사상탑과 삼지연 기념비 앞에서만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경애하는’으로 시작되는 안내요원들의 체제 찬양과 홍보에도 우리는 그러려니 이해했다. 아니 그러한 북한의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딱하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김일성-김정일 찬양 가사 뒷면에서 비쳐지는 북한 주민들의 거무잡잡한 얼굴과 조심스런 언행, 어두침침한 색깔의 옷과 무미건조하게 우뚝솟아 있는 건물들. 그 하나 하나가 다 선전과는 어긋나 보였다.

사실 체제선전은 말로 하는 게 아닌 것을. 보다 더 풍요로운 삶의 질을 제공해 주고, 선택의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하고, 폭넓은 자유와 다양성을 보다 많이 갖추어 주면 말 안 해도 저절로 되는 것이거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목소리라도 높이는 것 같아 북한 주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어떻든 북한은 우리에게 외국은 아니었다. 북한을 방문하는 데 여권이 필요 없다는 것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특수관계"로 설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우리의 매일 매일을 일일이 감시-통제하는 긴장과 보살핌(?)이 따라다녔다. 주어진 공간 내에서의 일정한 융통성은 있었기에 때로는 농담도 하고 때로는 남과 북의 차이를 확인하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무언가 벽이 존재함을 실감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남과 북이기에, 그래서 이러다가 정말 우리가 서로 남남이 되어버릴까 봐, 남과 북은 틈만 나면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주는 사람, 상품, 자본, 정보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사람, 상품, 정보도 자유롭게 오가도록 하는 틈새를 지금부터라도 준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번 방북이 감귤 보답의 초청에 따른 단순한 관광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방북이 ‘북한 바로 알기’를 위한 교육인 것으로 그쳐서도 안 된다. 그것은 바로 남과 북이 다름 아닌 우리 일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한라에서 백두’를 거쳐 남과 북이 상호의존을 확대해 나가는 선봉역할을 하는 평화의 섬 제주 의 한 부분이자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양길현·제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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