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5월10일 오전11시. 제주도민 방북단 253명은 통일조국의 물꼬를 트는 자긍심을 갖고 순안 평양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자국기를 이용한 직항노선의 방북은 남북분단상황에서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상공을 지나는 기내에서 필자는 지난날들의 북녘동포들을 위한 나눔 운동을 생각하며 깊은 상념에 젖었다.

 큰물난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녘동포들을 돕기 위한 ‘북한동포돕기 운동본부’를 제주지역의 8개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것은 지난 97년 4월이었다.

 우리는 단체별 회원모금, 가두모금, 옥수수죽 만찬, 그림전 등 다양한 방면의 활동을 통해 그 당시 지역 NGO로서는 상당액의 성금을 모금하여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사랑의 옥수수를 북녘에 전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 다음해에는 종교단체들과 연대하여 사랑의 감귤 보내기 운동을 범도민적으로 전개하였다. 이후 이 운동이 더욱 확산되기 위해서는 지역상공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 동포사랑 나눔 운동은 상공회의소가 중심이 된 체제로 전환됐다.

 예상대로 상당한 분량의 감귤과 당근을 남포항을 통해 북녘 땅에 보낼 수 있었으며 그 감사의 결과물로 대규모 도민 방북단 초청이 이루어진 것이다.

 평양 거리와 주민들의 모습은 15개월 전과는 확연히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는 지난해 2월 운동본부의 대표단으로 분배확인차 북한지역을 방문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거리와 주민들의 여러 모습에서는 고난의 행군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과 우리를 안내한 수행원들의 간접적 통제를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이상할(?)정도로 친절하고 좀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우리일행 중 업무차 방북한 옥수수박사인 김순권 교수(경북대)를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김 교수는 자신이 20여회 북한을 방문했으나 이번처럼 방북단의 규모가 큰 것과 단원들이 아무데서나 사진 찍고 활동하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며 제주도민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어쩌면 이번 초청방문이 앞으로 있을 대규모의 남측 민간 방문단의 행태를 관찰하려는 남·북 정부의 모델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개인적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이번 방문단은 농민, 교사, 자영업, 종교인, 시민운동가, 이산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인적 자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방북기간 중 기대됐던 아리랑 축전 참관이 미묘한 문제들로 인해 성사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방북 며칠이 경과한 날 밤, 고려호텔 인근에 사는 주민과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7세(인민학년 1년)의 어린 딸과 함께 부근 식당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마중 나온 주민이었다. 그는 제주에서 보내준 감귤에 대한 감사와 통일의 그 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밝은 웃음과 함께 헤어질 때 자기의 어린 딸에게 “애야, 남녘 제주에서 온 아저씨에게 뽀뽀해 드려야지”하는 것이었다.

 그의 어린 딸을 꼭 안아주며 ‘너희들이 커 있을 때는 남과 북이 함께 사는 통일 조국이 와 있을 꺼야. 이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의무이며 이 과업을 위해 평양에 왔으며 우린 더 노력할 것이야’ 이런 다짐을 마음속으로 했다. 5박6일의 일정을 마치며 생각되어 지는 것은 정치적인 이해를 떠난 실현 가능한 다양한 민간 협력 교류가 계속되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방문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민족으로서의 핏줄과 동질감을 느끼며 평화와 통일의 디딤돌을 쌓아 가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남과 북의 마음과 마음을 모아 함께 사는 평화로운 통일 조국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평양 순안 공항의 고려항공 트랩을 통하여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김태성·제주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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