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학 교수 김홍식 나는 우리 학교 입시생 면접에서 "최근에 우리를 분노케 한 사건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거의가 "옷 로비 의혹 사건"을 들었다. 수십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인천 호프집 화재"나 "화성 수련원 화재" 참사도 아니고, 며칠 전 "대구 지하철 공사장의 버스 추락" 사고도 아니었다.

왜 상대적으로 사소한 사건에 분노했던 것일까 ? IMF로 온 국민이 어려운 때 고관 대작의 부인들은 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옷을 사 입기 위해 우르르 몰려다녔다는 도덕적 해이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IMF를 졸업했다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이르다고 한다. 대우 문제가 걸려 있고 몇 불실 은행의 구조조정이 여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우만 하더라도 40조 내지 60조 정도의 공적자금 곧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해결의 기미가 보이며 여러 불실 은행들은 대략 200조 내외의 불실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천만원대의 옷 로비에 휘말린 사람은 줄줄이 구속이 되고, 천문학적 빚을 국민에게 떠넘긴 '세상에 할일이 많은 사람'은 전혀 책임조차 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한 1조 6천억원의 불실 덩어리를 남긴 은행 간부는 처벌이 아니고 질책 정도를 받는데 그쳤다. 그리고도 여론의 질타가 없는 것은, 천만원과 조는 단위가 전혀 달라서 서민들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모양이다. 천만원짜리 옷은, 10만원대 옷을 사면서도 몇번씩 생각해 보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할 때, 너무나 억울한 느낌을 주는 것이고 조 단위의 빚은 서민들에겐 천문학적 숫자이므로 모두 같은 별로만 보일 뿐 몸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큰 거짓말과 작은 거짓말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의 몸에 와 닿는 작은 거짓말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집착한다.

이번 시민단체의 낙천자 명단에 자랑스럽게도 우리 제주도 국회의원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모두 재선 이상의 관록이 있는 의원들인데도 빠져 있는 것은 우리 도 출신 의원님들이 남달리 소신이 있고 청렴한데 연유할 것이다. 그러나 힘 있는 자리에 계신 의원님들은 거의 망라되어 명단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의원님들은 혹 별 볼일 없는 자리에 계셨던 것은 아닌지….

어떻든 젊은이들은 세대 교체를 원하는 모양이다. 이왕이면 40대보다 더 젊은 30대 인물을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딱히 지목되는 사람도 없지만 예전에도 사회가 변화할 때는 새로운 구세주를 기다리듯, 그렇게 기대해 본다는 편이 낫겠다. 경력 있는 운전 기사는 노련이야 하겠지만 타성에 젖어 기존의 길만 고집할 것이고, 새로운 젊은 기사만이 새길을 찾아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태워다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옷 로비 사건에 의혹이 있다고 해서 장관급 두 사람을 구속시키는 특검제가 실시되었고, 시민단체는 낙천자 명단을 발표하여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과 같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줄 젊은 피가 요구되는 때다.

반면에 우리 기성 세대들은 조용히 젊은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후원자로 돌아설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태종이 세종에게 일찍암치 양위하여 새 시대를 열어 주었던 것과 같다. 아직 우리에게는 영국의 토니 브래어같은 젊은 기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변명이다. 태종이 일찍암치 세종의 인물을 알아보듯, 새시대 새 기수를 내세울수 있는 것도 우리의 능력이다. <김홍식·명지대교수·건축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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