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납시다.

평양공항에 닿은 순간 참으로 많은 감정이 오갔다.

처음으로 제주에서 평양까지 직항로로 도착했다. 우리의 항공기로. 두려움과 설레임, 1시간 5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이 곳을 분단 56년만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민족화해협의회 소속 안내원들과 함께 한 5박 6일 일정은 참으로 빡빡하게 이뤄졌다. 8대의 버스로 평양시내, 백두산, 묘향산, 남포의 서해갑문을 구경했다.

평양 시내는 도시계획이 잘 돼 있었다.

대동강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는 가로수가 이중으로 심어 져 공원을 이루고 있었으며 도로는 4차선, 6차선으로 시원스러웠다.

사회적 분위기 탓인지 경제적 여건 탓인지 건물들의 색채는 회색이 주종이지만 건물마다 나름대로 개성이 많았다.

평양 시민들은 가는 곳마다 손을 흔들어 맞아주었다.

만경대 소년학생궁전에서 본 소년, 소녀들의 공연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인형처럼 한결같은 표정과 빈틈없는 무대진행 안무는 얼마마한 연습과 힘이 들었는지를 짐작케 했다.

지금 평양은 아리랑축전이 한창이라 각국 동포들과 외국관광객들이 많았다.

하지만 제주 방문단은 그 누구보다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 어깨를 보듬고 살아야할 동포이기 때문이었다.

민화협 안내원들은 처음은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살아왔기 때문에 대화가 힘들 것이라 짐작했지만 한 핏줄을 나눈 우리동포라 그런지 정치적 이야기를 빼면은 편안하게 대화가 잘 통했다.

평양시민과는 기회가 닿지 않아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식당이나 호텔에서 만나는 접대원, 관람지에서 만나는 판매원, 안내원들은 참 친절했고 따뜻했다.

김일성 주체사상탑, 기념관, 국제친선관람관 등 전시를 위한 시설에는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많은 투자와 정성을 들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국제친선박람관은 각국의 대통령과 원수들 그리고 유명인사들이 보내준 선물들, 생활가구에서부터 골동품, 민속품 등 종류도 다양했다. 우리나라 H그룹 회장이 보낸 중형차와 S전자에서 보낸 대형 TV도 그 곳에 있었다.

그러나 오직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을 흠모한 나머지 보내주었다’는 안내원의 설명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또한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를 본 시간보다는 그들의 주체사상을 위해 지은 기념탑과 전람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기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번 관람지에서 좋았던 곳은 평양시 력포구역 룡산시에 자리잡고 있는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기원전 298∼259)릉지와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개건된 단군(우리민족의 원시조) 릉지다. 교과서로만 배웠던 우리의 뿌리가 그곳에 있었으며 다시 한번 한 민족이라는 것을 느꼈다.

북에서 들었던 노래를 소개하려한다.

1. 백두에서 한라로/우리는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나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2. 부모형제 애타게/서로 찾고 부르며/통일아 오너라 불러 또한 몇해였던가
3. 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가도/해와 별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요
후렴) 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칩니다/안녕히 다시 만나요

5박6일의 시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방북에 참으로 뿌듯함을 느끼고 동포애를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이기에 분단 50년으로는 우리를 떼어내지 못한다.

통일의 그 날까지 모두 노력하고 애정을 갖고 북한을 바라보아야겠다.<강윤진·제주도정신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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