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익 탐라문화연구원·논설위원

초원에 말 대신 닭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어떨까?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초원을 나는 닭'은 본래 중국 정부가 1990년대 후반부터 내몽골 초원지대의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 명칭이다.

중국 정부는 네이멍구 초원지대가 현지 주민들의 지나친 소와 양 방목으로 인해 사막화되어 가자 이곳의 초원을 보호하기 위해 소와 양 방목을 금지하는 금목(禁牧) 정책을 폈다.

그로 인해 현지 주민들이 대대로 기르던 소와 양을 더 이상 초원에 방목하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서 중국 정부는 네이멍구 목축민들의 경제난을 해결하면서도 사막화를 방지할 수 있는 '초원비계(草原飛鷄)' 프로젝트를 만들어 시행했다.
이것은 중국 정부가 현지 주민들에게 초원지대에서 다량의 풀을 소비하는 소와 양 대신에 풀 소비와 상관없는 닭을 방목하도록 한 후, 초원에서 키운 닭을 판매한 수입으로 생활하도록 유도한 정책이었다.
초원비계 프로젝트는 사막화 방지와 함께 현지 주민들의 경제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이선화, 2015).

이러한 초원비계는 비록 양상은 다르나 초원지대에서 목축했던 목축민(공동목장)들이 급속히 소멸하고 있는 제주의 현실에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최근 제주연구원에서는 '제주지역 마을 공동목장 관리 실태와 개선방안'(2018)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첫째, 1943년 123개였던 마을 공동목장이 2018년 말 현재 39개로 감소하였을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84개 목장조합이 해체되었으며, 특히 중산간 지대 개발 붐이 일던 1970~80년대와 2000년대에 마을 공동목장 매각 현상이 뚜렷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목장운영 주체가 마을 이장이나 영농조합법인 대표로 변모해 최근에 마을 공동목장이 변질하여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제주 전 지역 부동산 공시지가 상승에 영향을 받아 공동목장 땅값이 올라가면서 일종의 기대 심리가 작용해 공동목장조합 재결성을 요구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넷째, 공동목장을 운영할 재력과 인력이 모자라고 목축을 포기한 조합원들이 많아 불가피하게 조합원 총회에서 공동목장 매각을 결정한 목장조합이 다수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정부의 축사 현대화 정책과 부동산 공시지가의 상승은 오히려 공동목장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자본 규모가 영세한 목장조합에서는 축사 현대화에 필요한 자금 확보가 쉽지 않고, 공동목장을 소유한 목장조합이나 마을회가 내는 거액의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공동목장조합을 뿌리채 흔들고 있다.

세금을 내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공동목장 일부를 팔아 그 매각대금으로 세금을 내야 하는 목장조합이 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앞으로 세금폭탄을 감당하며 온전하게 유지하는 공동목장이 과연 몇 개가 될는지 의문이다.

고액의 세금문제를 해결하고 공동목장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제주형 초원비계' 정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국회에서 세법개정을 통해 공동자산인 마을공동목장에 대한 감면세 정책을 시행했으면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마을주민 공동소유의 임야에 대해 면세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공동목장을 활용한 모델을 마련했으면 한다.

풍력발전 설치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중산간 목장지대가 풍력발전으로 채워질 경우, 중산간 고유의 초원경관을 헤칠 우려가 있다.

목축경관 직불제 실시나 전통 목축문화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장치 마련도 바람직하다.

중산간 초원지대는 본디 목축의 땅이었다. "중산간에 공동목장이 없으면 더 이상 중산간 마을이 아니다"는 어느 촌로의 절박한 지적처럼, 중산간 공동목장을 살리기 위해 제주도민과 제주도청, 정부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