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 사회부 차장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귀향' '눈길' '허스토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위안부 피해 실상을 담았다는 점이다. 10대의 나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노예로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아픈 역사를 그렸다. 이들 작품 가운데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실제 모델이자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었던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밤 영면에 들었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줬으면 좋겠다.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맡길 테니 열심히 해달라. 끝까지 싸워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임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던 1992년 3월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이듬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해 국제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증언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성노예 피해의 고통을 여성인권과 평화운동의 동력으로 삼아 평생을 바쳤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성폭력 피해자와 이재민, 전쟁 피해 아동 등을 돕는 데에도 앞장섰다. 2014년에는 베트남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사죄와 함께 연대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국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29일 빈소를 찾아 김 할머니 앞에서 큰절을 했다. 문 대통령은 조객록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 가십시오'라는 글을 남겼다.

김 할머니를 떠나 보낸 슬픔의 무게는 잴 수조차 없을 만큼 크다. 대장암 투병중에도 1인 시위에 나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기억될 것이다.

"죽기 전에 일본 아베 총리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고 싶다"는 김 할머니의 한 서린 소망을 잊지 않아야 한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 일본으로부터 공식 사죄를 받아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는데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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