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복고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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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한민국에 일대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전설적인 영국 록 밴드 '퀸(Queen)'과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말 개봉 후 입소문과 재관람 열풍을 타고 지금까지(올해 2월 6일 기준) 993만명이 관람했다. 영화의 제목이자 퀸의 대표곡인 '보헤미안 랩소디'는 살인을 다룬 가사의 내용 등으로 한때 국내에서는 금지곡이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의 이례적인 흥행 요인으로 퀸 음악에 대한 향수, 유색인종·성소수자 등을 위해 노래했던 퀸의 정신에 대한 공감, 싱어롱관 등을 활용한 마케팅, 후반부 폭발적인 라이브 무대의 감동 등이 꼽힌다. 무엇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복고 감성은 중장년층을 영화관으로 이끌었고, 퀸을 알지 못했던 젊은층에게도 새로움으로 다가왔다는 분석이다. 복고는 대중문화를 필두로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복고(復古)를 의미하는 '레트로(Retro)'는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Retrospect'의 준말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 전통 등을 그리워해 그것을 본뜨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Progress) 같은 말에 붙는 'Pro'와 반대로 'Retro'는 보통 부정적인 뜻을 지닌 단어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회고(Retrospection), 역행(Retrograde), 퇴보적(Retrogressive) 같은 단어다. 혁명에 실패하고 왕이 다스리던 옛날로 복귀하는 왕정복고(Retroration)에도 '레트로'가 쓰인다. 하지만 복고는 문화현상과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신조어로서 새로운 지위를 갖게 된다.

복고라는 용어가 꾸준히 사용된 분야는 패션이 아닐까 싶다. 복고풍(Retro style)은 이제 하나의 패션 스타일이 됐다. 패션에서 복고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복고주의 패션 또는 과거 지나간 시대의 패션을 현재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재해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옛 것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기 위해 과거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감각을 현대에 접목해 현대적 감성에 맞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대중문화를 강타한 복고 열풍

대중문화계의 복고 열풍을 각인시킨 사건으로 몇년전 방영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을 꼽을 수 있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에 이어진 '응팔'은 88서울올림픽으로 대변되는 경제 호황과 민주화 흐름에 힘입어 다양한 대중문화가 꽃피우기 시작했던 1988년을 배경으로 가요와 드라마, 개그, 영화, 광고 등 당대 대중문화와 유행을 고스란히 불러냈다. 또 드라마 속 맥주,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비롯해 롱코트, 나팔바지 등 상품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30년전 가요가 역주행으로 인기를 끌며 세대가 교감하는 음악들도 생겨났다. 

TV속 복고 열풍은 계속된다. 공중파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는 가요계 전설의 노래를 요즘 가수들이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이며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방송하면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던 'TV는 사랑을 싣고'도 지난해 부활했다.
영화계에서 재개봉도 두드러진 현상이다. 지난 2015년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이 개봉 당시 두배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후 예전 히트작들의 재개봉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개봉 10주년, 20주년 같은 타이틀을 달기도 하고 최신 기술를 추가해 선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미 검증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마케팅이 필요없고 관객층이 40~50대까지 넓어져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에서도 복고는 강세다. 1970~1980년대를 재현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비롯해 '국가부도의 날'은 1990년대, '스윙키즈'는 1950년대, '마약왕'은 1970년대로 관객을 안내한다. 단지 스토리만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을 재현한 세트, 패션, 음악, 춤, 소품 하나까지 시대정신과 감성을 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최근 국내에서 H.O.T, 젝스키스 등 1990년대 아이돌이 재결합해 관심을 끌었다. 이는 팝의 본고장 영국과 미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영국 출신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 아일랜드 보이그룹 '웨스트라이프', 미국의 '백 스트리트 보이스' 등도 컴백한다는 소식이다. 

△지친 일상에 스며든 작은 위안

왜 복고인가. 영국 출신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저서 「레트로 마니아」에서 팝음악 전반에 만연한 레트로 문화를 진단하며 이러한 문화가 우리 시대 독창성과 독자성에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복고 열풍은 상업적 필요이기도 하고 창작의 어려움이 낳은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복고 열풍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대중들이 과거를 추억한다는 것은 현재가 괴롭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미다. 대중가요를 봐도 아이돌, 기계음, 댄스음악 일색인 가요계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은 7080과 통기타에 열광한다. 

또 디지털의 습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발로도 이해할 수 있다. 빛의 속도로 발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아날로그의 청량함을 원한다. LP판을 찾아서 듣고 필름카메라의 느림을 즐긴다.

복고에 대한 소비는 세대별로 다르다. 기성세대는 과거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추억을 소환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청년세대에게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일 것이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오다 직접 접해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이를 뉴트로(New+Retro의 합성어.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라 하기도 한다.

지나칠 정도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이를 뒤쫓는 일은 버겁고 멀미가 난다. 치열한 경쟁을 벌어야 하는 현대인들은 옛 감성에 젖어들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유행은 돌고 돈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소환된다. 김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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