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의 감귤보내기에 대한 북한의 초청에 나는 제주도민 한사람 한사람의 따뜻한 온정을 마음속에 새기며 방북길에 올랐다. 나는 강원도 철원에서 북녘땅을 바라보며 군복무를 했었다. 그때 나는 북녘땅을 바라보며 “바로 저기가 우리 한 동포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갈 수 없다니…” 애통한 마음이었고 38선은 너무도 높아 보였었다. 그렇게 높아만 보였던 38선을 우리 제주도민은 직항로로 평양을 가게 되었으니 감귤보내기 사업이 얼마나 큰 역사를 만들어 냈는지를 감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첫날 오후엔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제주도민을 환영하는 환영공연이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보여준 공연은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예술학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돌아보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날 김일성 생가를 가게 되었는데 초가집과 넓은 잔디는 우리 정서에 참 좋았다. 우리가 방문한 그 시간 많은 북한 인민들도 고향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길이란 길은 꽉 막힐 정도로 어른에서 아이들까지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우리가 지나갈 땐 손을 흔들며 반기었다.

평양시내의 거리는 대체로 한산하였으나 대동강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으며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몇몇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등 조금은 여유도 보였다. 우리는 평양주변과 명소만을 방문하여 깊은 부분까지 알기는 어려웠으나 이동하는 중에 시골 풍경과 농촌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한창 모내기철이라 곳곳에 혁명의 붉은 깃발을 꼽아놓고 전투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았을 땐 왠지 모르게 섬짓하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논밭은 쉴새 없이 일하는 주민들의 생활을 보여 주었고 큰 대로를 제외하고는 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일어나는 광경은 어릴적 추억을 되새기게 하였다.

북한 주민과는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 못했지만 우리를 안내하는 북측 민화협 회원들과 자주 얘기를 나누었다. 알다시피 북한은 종교탄압국가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나라이다. 얼마 전 유엔에서도 북한에 권고한 바가 있다. 이튼 날 저녁 보도에 마치 그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유엔의 발언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보도를 하였다. 나는 종교에 몸담고 있기에 안내원과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관심이 없는 북한사람들이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종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운전하는 김 모씨는 묘향산 보현사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고 하였다. 방문 5일째 되던 날 묘향산에 보현사를 방문했을 때 초파일이 임박했는데도 관등이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우리는 백두산과 묘향산, 삼지연 호수, 대동강, 모란봉, 동명왕릉, 서해갑문 등을 방문했다. 5박 6일 동안 함께한 안내원들과는 어느새 형 동생하며 남과 북을 따로이 찾을 수가 없었고, 여행지 곳곳에서 만난 안내원들은 온 정성을 다해 복받치는 음성으로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어 우리는 박수를 치곤했다. 수려한 금수강산을 보면서도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상화의 동상과 선전물들로 인해 자연경관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이나 중국은 지역적으로 가까운 나라이다. 북한은 한 민족이고 땅도 하나이지만 더 먼 나라로 생각되어져 왔다. 북한에 갔을 때 처음엔 불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일본이나 중국을 여행하는 것보다도 더 편한 마음임을 여행을 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말도 통하고 눈빛도 통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도 통해졌다. 통역이 필요 없는 여행이었다. 서로 체제는 달랐지만 평화적인 통일이 오리라는 것을 다짐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놓아 불렀다.<정대래·원불교제주교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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