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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담론] 졸업즈음에오승은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논설위원
오승은
입력 2019-02-12 (화) 16:59:58 | 승인 2019-02-12 (화) 17:00:57 | 최종수정 2019-02-12 (화) 17:10:29

오랜만에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달 내내 수도권에 드리웠던 미세먼지의 심각함과 숨막힘으로부터 멀리 제주에 살고 있는 나의 행운과 길었던 명절 연휴동안 며느리 된 자들의 애환에 대한 짤막한 넋두리에 이어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이제 졸업식을 앞둔 대학생 아이가 우수한 성적으로 무사히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총장님으로부터 상까지 받게 되었다고 하니 생전 처음으로 아이의 지도교수님께 무언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지 알려달라고 했다. 너무 과하거나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은데 도무지 무엇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선생으로서 나의 경험상 학생으로부터 받았던 선물 중 무엇이 가장 기뻤느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해 본 후 예전에는 졸업식 당일에 본인이 선물로 받은 꽃다발이나 케이크 같은 작은 선물을 두고 가는 학생들이 있었으나 요즘에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때문에 선물을 받을 수 없으니 정성껏 쓴 감사의 손편지가 좋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책상서랍 속에 차곡차곡 들어있는 손편지들은 가끔씩 힘들 때 꺼내보면 충전되는 에너지원이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 학생들이 사은회라는 행사도 주최했었다. 졸업반 학생들이 교수님들과 함께 저녁을 같이 먹는 행사였는데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도 마포에 있는 호텔 식당에서 교수님들을 모시고 식사를 했었다. 학생들에게 호텔식사는 사실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되었지만 4년 동안 가르쳐주신 교수님들께 한번쯤 좋은 곳에서 대접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2차에는 졸업파티로 나이트클럽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이런 걸 두고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하던가). 식사를 마치고 교수님들께서는 2차 비용에 보태 쓰라고 하시면서 금일봉을 주고 가셨다. 물론 우리가 교수님들께 대접했던 밥값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었다.

내가 교수가 되고 나서 보니 그때까지도 관습적으로 사은회가 매년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졸업 전에 대부분 취업이 결정되었던 우리 때와는 달리 졸업 후에도 몇 년간을 취업준비생으로 지내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시대가 되면서 사은회는 불편한 관행이 되었다. 결국 학과 교수들이 먼저 사은회를 생략하자고 학생회에 제안했고 더이상 사은회를 하지 않게 되었다.

대학의 졸업식이 대부분 2월 중순 발렌타인 데이 무렵에 있기 때문에 정성껏 직접 만든 수제 초콜릿도 학생들이 많이 가져오는 선물들 중에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물은 어느 여학생이 수줍게 주고 간 네모난 시리얼 상자였다. 먹으면 호랑이 힘이 솟아난다는 광고를 하는 그 콘프레이크를 먹고 호랑이처럼 건강하고 기운차게 지내시라는 카드가 들어 있었다. 어느 해인가는 돈이 없어 선물은 사지 못했다고 내 얼굴을 예쁘게 종이에 그려 들고 온 학생도 있었다. 책을 사주고 싶었는데 교수님께 무슨 책을 사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아르바이트 해서 샀다는 만 원짜리 도서상품권을 편지에 넣어 준 학생도 있었다.

청탁금지의 시행 이후에는 졸업식은 물론 평소 학생들이 들고 오는 캔커피나 빼빼로 데이 막대초코과자도 모두 돌려보내게 되었다. 예전의 낭만이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담긴 작은 기쁨들이 사라지는 것은 조금 서운한 일이지만 빈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선생을 찾아올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잘 된 일이다.

대학과 달리 최근 초·중등학교의 졸업식은 거의 12월말이나 1월에 하게 된 것 같다. 2월에 정상수업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체험학습이나 해외연수 등을 가기 편리하다는 장점 때문이라지만, 1월에 졸업하여 3월 입학까지 두 달 동안 무적(無籍)의 백수가 되어 갈 곳 없는 학교라는 보호의 울타리가 없어진 아이들이 생길까봐 내심 걱정도 된다. 이런 걱정이 노파심에 그쳤으면 좋겠다.

오승은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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