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다 가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천하를 떵떵거리며 살았던 조선시대의 왕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다갔을까.

 제주의 현직의사 강영민씨(57·강영민내과 원장)가 최근 낸 「조선시대 왕들의 생로병사」는 갈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출간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책은 의사가 조선시대 왕들의 삶을 병의학적 측면에서 접근해 관심이 더해지고 있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했던 왕들도 병마와의 싸움에선 속수무책이다. 인기리에 방송됐던 「태조 왕건」에서 ‘등창’으로 고생했던 견훤, 「제국의 아침」에서 광기로 왕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혜종의 모습은 병마 앞에서는 왕도 한낱 나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생로병사」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부터 27대 순조까지 27명의 왕들의 다양한 삶이 담겨있다. 인간적인 모습에서 광기에 날뛰는 동물적인 모습까지 현대의사의 시선으로 천하를 다스렸던 조선시대의 왕들의 병과 사망원인이 상세히 조명돼 있다.

 태조는 중풍으로 청심환을 먹다 사망했다. 태조가 앓기 시작하자 태종은 팔뚝에 연비를 했고 상왕 정종도 밤새 불상 앞에 꿇어앉아 12주(炷)나 팔뚝을 지졌다한다.

 독서광에다 뛰어난 업적으로 선정을 베풀었던 세종은 각통·등창·각기병·소갈증·당뇨병·안질 등 각종 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 8형제와 딸 10명 등 18명의 자식을 두었다. 적손인 9살짜리 단종이 너무 어려 키워줄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하다 제갈량이 죽은 54세 때 ‘뚜우’ 천아성을 울렸다.

 문종은 효성이 지극했다. 몸소 팔을 걷어붙여 선왕인 세종의 수라상을 챙겼으며 좋아하는 앵두를 드리기 위해 앵두를 심고 따다 드렸다. 세종은 문종이 복어요리를 올리자 감복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먹었다는 이야기도 소개됐다.

 명종은 ‘조선판 마마보이’. 어머니 문정왕후의 엄격한 교육에 시달리며 종아리를 맞다 지나친 방사(房事)와 화병으로 34살에 죽고 효종은 머리에 종기가 나 어의가 침을 놓아 고름을 짜냈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 의문사 했다. 크게 앓아본 적 없는 영조는 조선 왕 가운데 가장 최장수의 삶을 누리다 83세 때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단순하게 조선시대 왕들이 ‘어떤 병을 앓고 어떻게 살다갔다’는 식의 단순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왕들의 업적과 당시 시대상황, 풍습 등을 다뤘다. 같은 나이에 죽은 세계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찾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도 자극한다.

 이 책은 1년 넘게 집필에만 공을 들여 나온 것이다. 집필과정에 백내장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정확한 고증을 위해 사학자들에게 자문하거나 서울 국립도서관, 서울대 도서관 등을 전전하며 자료를 구해 읽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등 참고서적만 41종에 이른다.

 “다양한 의술이 미치지 못했던 시대를 살았던 왕들은 어떤 병을 앓았고 어떻게 병을 고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책을 썼다”는 저자는 “조선왕들은 까다로운 궁궐법도와 정치적 상황에 따른 스트레스, 운동량 부족, 지나친 성생활 등이 건강을 해친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요즘 술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책을 준비하고 있는 저자는 일주일에 3∼6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컴퓨터에 빠져있는 청소년들이 책읽기에도 빠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조언했다. 태학사·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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