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사회부 차장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가난한 사람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시말해 부모가 빈천하더라도 자식이 출중하면 부모의 신분과 처지를 뛰어넘어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요금 시대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현불가능한 '신화'에 가깝다. 조선시대에는 양반, 서민, 천민과 같은 신분 계급이 있었다면 최근 사회 안에서는 이른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현대판 계급이 등장하고 있다. 부모의 신분과 물려받은 재산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으로 결정된다는 '수저 계급론'까지 나왔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 선생 역할을 맡은 배우 김광규씨가 했던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대사는 1970~80년대 사회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부모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가 학생의 평가에 영향을 미쳤던 사회 부조리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 능력으로 사회의 출발선이 결정되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최근 자신의 아버지가 막노동꾼이라는 사실을 고백한 아나운서 딸의 글이 사회에 깊은 울림과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임희정 전 아나운서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저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소개했다. 임 전 아나운서는 집안형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노동 일을 한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부모님은 가난과 무지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내가 개천에서 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정직하게 노동하고 열심히 삶을 일궈낸 부모를 보고 배우며 알게 모르게 체득된 삶에 대한 경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를 움직인 가장 큰 원동력은 부모였다"며 "물질적 지원보다 심적 사랑과 응원이 한 아이의 인생에 가장 큰 뒷받침이 된다"고 강조했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청년들이 갈수록 줄고 있는 지금, 가난이 가난을 대물림한다는 굴레를 부정하고 이를 극복해 낸 임 전 아나운서의 진솔한 고백은 현실에 좌절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일임은 분명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가 고착화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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