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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버린 저 편의 문장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입력 2019-02-25 (월) 15:06:10 | 승인 2019-02-25 (월) 15:07:45 | 최종수정 2019-11-05 (월) 15:34:03

겨울이 가는가 싶다가도 아직은 아니지 싶은 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싸하다. 비염으로 보름여 고생했더니 코끝에 맺히는 싸한 공기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뻥 뚫린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코가 막히니 귀도 멍하고 눈도 침침하여 세상이 미세먼지로 꽉 찬 듯하였다. 아무리 코를 풀어도 콧물은 어디서 솟아나는지. 비염의 혹독한 위력을 처음 경험하였다. 평소에 맹맹하고 간지러운 느낌을 대범하게 무시했더니 생긴 결과이다. 어떤 것이든 신호가 먼저 온다는 것을 대놓고 무시했다. 또한 감각의 열림이란 게 얼마나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열린 감각이야말로 의식의 명료함을 갖게 하는 제일 조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른 아침, 새 한 마리 사물의 일부인 듯 나뭇가지 위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발소리를 죽이며 가까이 가는데 꿈쩍도 않는다. 가끔씩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필 뿐이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동료인 듯한 새들은 이 나무 저 나무, 이 건물 저 건물 위를 부산스럽게 날아다니고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들도 사람처럼 마음이 먼 곳을 향하고 있으면 귀가 멀기도 할까? 사람은 사랑에 열병을 앓으면 이불을 덮고 몸져눕기도 하는데 새들은 어떻게 할까? 

조류학자 팀 버케드는 「새의 감각」이라는 책에서 새들에게는 청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청력을 재생하기도 하고 일시적 귀먹음 현상이 있다고도 한다. 새들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감각을 열어둘 수밖에 없다. 주변에 소리에 민감하기도 해야지만 저들끼리 신호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손상될 위험도 크다. 스스로 재생력이 갖추고 있지 않다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생명체마다 생존을 위한 스스로의 진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진화하기 위해서 어떤 여정을 걸을까?

영화 '그레이트 뷰티(파올로 소렌티노, 2013)'의 엔딩 크레딧은 참 인상적이다. 티베레강을 배경으로 자막이 이리저리 흐르는데 마치 새의 날개짓 같다. 영화 OST 'The Besutitides' 가 흐르고, 강의 물줄기를 따라 여러 소리들이 합쳐져 흐른다. 물소리, 새소리, 사람소리, 그리고 성당의 종소리. 베르니니의 천사상이 있는 산타젤로 다리 위에서 수녀들은 조용한 수다를 나누고, 자동차들도 조용히 움직인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시적 장면 연출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 '그레이드 뷰티'의 주인공 잽 젬바르델라(토니 세르빌르 분)는 65년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깊은 회의감과 고독감에 젖어든다.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명성과 부, 쾌락의 극단까지 경험해보았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석연치 않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주인공 잽은 "파티를 초라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갖고 싶었다."고 말한다. 생의 파티를 즐기고 싶은 게 아니라 파티 이면의 그림자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삶 그 자체가 속임수"라면 진실은 그 이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찾아 헤매었지만 듣게 되는 건 '첫사랑의 죽음'과 허위에 찬 신부의 끝없는 요리 레시피설명, 존재증명과 쾌락에 사활을 건 유명인사들과 배우들뿐이었다. 그가 발견하고 싶은 건 삶의 아름다움인데 말이다. 그러면 소설도 다시 쓸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잽은 성녀 마리아를 만난다. 성녀에게서 어떤 깨달음을 기대했다는 듯 카메라는 성녀의 이미지를 클로즈업한다. 반쯤 감은 눈과 흔들거리는 슬리퍼, 물고기 비늘을 연상하게 하는 피부, 앞니 몇 개를 남기고 다 빠져버린 이… . 그것은 성녀라기보다는 죽음 직전의 노인에 더 가까웠다. 몇 번의 질문과 대답 끝에 얻은 것, "내가 뿌리만 먹는 이유는 뿌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이다. 그리고 수녀는 크게 한 숨을 쉰다. 그때 테라스에 머물러 있던 홍학의 무리가 하늘로 사라진다. 마치 삶이란 게  한 순간 이곳에 머물다가 죽음 저 편으로 사라짐을 의미하듯 말이다.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 때 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 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헤르만 헤세, 유리알유희의 생의 계단 중에서)

새가 나뭇가지에 잠시 머무는 순간은 다음 여정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일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어느 한 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골똘히 쳐다보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새로운 날개 짓을 위한 쉼표가 아닐까.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에 오래 시선을 머물고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영화라는 환상을 지우고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 조용히 숨고르기를 하기 위해서이듯 말이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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