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찬란한
봄날에도
수박이 탐스럽게 맺힌
여름날에도
그늘에 앉아
입 꾹 다무시고
주름살 찡그리고 계시던
그 분
사탕 한 봉지 장롱 안에
감추어 두고서
몰래몰래 하나씩
꺼내 드시는 그 모습
당신 색시 칠순잔치 때도
닭 한 마리 잡지 않던
고약한 노인네
그 곁에 찾아온
개구쟁이 손주 녀석들
손주 녀석 손에
꼭 쥐어주는
사탕 한 개
매일 아침 닭 잡는 소리에
단잠에서 깨어나는
이웃집 사람들
초가집 그늘에서
손주들과
주름살 하나 하나 지우며<홍성혜·제주여중 3>
◈고등부 운문 최우수-고모 할머니의 파도
할머니는
숨을 쉬고 계셨다.
숨결 따라
푸른빛 담요를 물결 지으며
천천히 닻을 올리셨다.
열다섯 때
물질 간다는 거짓말로
일본행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홀로 살아남은 이후
할머니 삶엔
큰 파도가 많았다.
산에서 내려오면 다 빨갱이라
붉은 바다로 보내던 시절
할머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몇 목숨을 건지셨다는데
조랑조랑
소라껍데기 같던 자식들
한 품에 담지 못해
파도에 쓸어 보내고
고모 할머니의 병상은
나날이 고요해지다가
어느 날
새벽 물결에
기억을 싣고 떠나셨다.<고주연·제주중앙고 2>
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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