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부 산문 최우수-희망의 함성 속의 아름다움
희망의 함성! 광활한 우주의 범위 속에 삶과 죽음이라는 한 순간의 공간 속에서 울부짖는 희망의 함성은 그 누가 들어도 따뜻한 마음의 한 뿌리씩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4년 전, 지금은 암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신장들이 녹아 버려 지금은 떠나 버리신 이 땅에는 서 계시지 못하는 삼촌께서 한 생명의 선물을 받으셨다. 외숙모께서 아이를 나으신 것이었다. 그 생명의 울부짖음은 또 하나의 희망을 삼촌의 가슴속에 심어 준 것이다.

“엄마, 외숙모께서 아기 나으셨다면서요? 축하한다는 말 해드리러 가야겠어요.”

“승엽아, 외숙모 아기 이름 모르지? 소희래. 김소희! 그런데…”

난 엄마의 말씀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머리가 바람에 휘날릴 정도로 뛰어갔다. 무슨 기분에서인지 새하얀 하늘을 쳐다보며 또 하나의 생명의 기적을 두 손 모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띵∼동! 띵∼동!”

“누구니?”

“승엽이에요. 소희 보러 왔어요.”

“어, 기다려봐.”

난 심장의 고동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려 오는 순간 놀라움을 이내 감추지 못한 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뛰어들어갔다. 무슨 설렘의 기다림이었을까. 두 눈의 검은자와 흰자의 교차를 막고 멈추게 한 순간 내 앞에는 작은 생명이 보였다. 소희였다.

“소희야, 소희야”

“…….”

난 이내 정적이라는 순간을 맛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소희는 내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다리를 오징어의 다리인 양 비비꼬았다. 이것은 보통 아기들이 아닌 나도 모를 그 어떤 것이었다.

“승, 승엽아! 노, 놀랐지! 소희는 불행하지만 뇌성마비라는 병을 앓고 있어. 앞으로 많은 고통과 인내이기도 하단다.”

이내 울음과 함께 말을 잇지 못하시는 외숙모의 두 눈가를 보며 숨을 죽인 채 삼촌집을 나왔다. 엄마의 말씀을 다 듣고 갔더라면 순간적인 정적도 또한, 외숙모의 울음도, 그 하나의 어색함 또한 찾아볼 수 없었을 텐데 하고 후회한 채 죄 없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느님! 이 생명의 소중함을 아시기에 말씀드립니다. 소희가 제 눈을 마주 볼 수 있게, 다리를 펼 수 있게 구원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기적의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말입니다.”

어렵사리 하루가 한 시간 같던 세월의 흐름이 지나 4년이 지난 현재 그 어떤 기적의 희망을 내 소원만큼이나 이루어 주셨을까…

“소희야! 소희야! 이제는 걸어 다니는구나.”

“우리 소희가 재활센터를 열심히 다녀서 이제 설 수도 있단다.”

난 기쁜 소식의 메아리가 내 귓속의 고막을 자극하는 순간 소희의 재활센터에서 소희가 치료받는 것을 보았다.

“으아앙! 으아앙!”

이 울부짖음은 무엇이란 말이냐? 이 함성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난 그 함성을, 울음을 듣자마자 소희를 보았다.

“소희야! 힘내! 할 수 있어!”

난 큰소리로 소희를 응원했다. 그 함성의 소리는 그 어떤 괴로움도, 슬픔의 함성도 아니었다. 하나씩 아픔을 견디며 차츰차츰 나아가는 아름다움, 기쁨의 함성이었다.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한 것이 희망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주 공간 속에 삶과 죽음이라는 장대한 숨소리 앞에서 난 배웠다.

‘달보다, 별빛보다 영롱하고 밝은 것은 이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 중에는 아마 희망의 함성일 것이다.’<이승엽·제주중 2>

◈고등부산문 최우수-산이 내게 말했다
“뭐? 산을 두 개씩이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여유가 없다고 중학생으로 맞는 마지막 겨울방학에 여행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나랑 동생이랑 신이 나서 대한민국 전도를 펴놓고 열심히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아빠가 짜놓은 여행 계획은 우리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싹 사라져 버리게 만들었다. 맙소사 2박3일의 짧은 여행에서 이틀동안 산이라니… 그 때의 그 암담한 기분을 누가 알까. 한라산도 윗새오름까지 하루 종일 걸려 다녀온 데다가 그 여파로 며칠 동안 끙끙 앓아 누운 녀석한테 태백산은 무엇이며 북한산은 뭐냔 말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들이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딸을 죽이기로 작정을 하셨군. 내가 무슨 초인인줄 알고 계시나. 이 살들을 다 근육으로 알고 계신가하면서 투덜투덜 아빠의 눈흘김을 피해가며 말이다.

태백산은 정말 아름다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이젠이 눈 위를 뽀드득 밟아대는 소리도 기분 좋았고, 나무에 흐드러지게 핀 눈꽃은 꽃들의 여왕이라는 장미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하얀 산들이 굽이굽이 이어진 이 산은 힘들게 걸어온 그 보람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고, 북한산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다. 이왕 육지에 올라온 김에 이것저것 다 해 보자는 ‘제주 촌놈’ 욕심에 청량리역으로 가는 새벽 열차를 타고 밤새 달렸는데 피곤해서 잠이 든 기억밖에 나지를 않는다. 하긴 무리했지. 그 산을 폴짝폴짝 뛰어다녔으니. 역 화장실에서 눈곱을 떼 내고 간 북한산은 처음엔 별거 아니었다. 돌계단이 층층이 쌓여 있고 도심에 있으니 네가 높아봤자 얼마나 높을 거며, 험해봤자 얼마나 험하겠냐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이 산은 그리 만만한 산이 아니었던 거다. 올라 갈수록 미끈한 바위들에는 살얼음이 끼었고 북한산성 위로부터는 정말 암벽이었다. 가파른 암벽을 로프 하나 없이 올라가야 하는 거다. 젠장, 무서워 죽겠는데 ‘이 산을 오르다가 몇 명 죽었으니 조심하시오’라는 푯말은 왜 붙은 거야. 길 표시 해 놓은 쇠줄을 맨손으로 땀이 나도록 꽉 움켜쥐었다. 몇 번 미끄러져 내려갈 때마다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죽음이 내 앞에 있는 것 같아서, 떨어져서 죽을 것 같아서 정말 무서웠다. 정상에서 줄을 꼭 잡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울면서 찍은 그 사진을 보면,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어이없게도 그 정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지탱하던 힘은,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이었다. 정말,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는 무척이나 나약한 아이였다. 뭔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어 버리고, 조금만 힘들어도 이 세상 모든 이들의 불행을 나 혼자 가진 것처럼 살았다.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들어도 ‘난 안 돼!’하면서 포기하기 일쑤였고,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던 아이였다. 세상에 이런 녀석이 막상 그 순간에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나니 나는 겁쟁이였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하고, 혼자 자학하고 실패하는 것이 무서워서, 혼자 맞서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내 본분을 다 했는데 세상은 왜 나한테 그러는가 하는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려버리는, 그렇다고 죽지도 못하는, 그런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좀 평탄한 내리막길에 들어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그렇게 시시하게 쓰러지는 게 아니다. 그 순간에 그저 살고 싶었잖아! 나를 묶어 놓고, 가둬 놓았던 건 내 나약함이었다.

인생은 산행과 같다고 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그만큼 내리막길도 있다. 자기가 오른 만큼 내려갈 수 있고, 그만큼만 느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힘들긴 했지만 보람 있었지 하며 싱긋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지치고 힘들지만 전처럼 나약해지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시련은 이길 수 있는 자에게 내려지는 것이고, 나는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선택된 것이다. 난 이 힘겨움을 최선을 다해 이길 것이고 나중에 어른이 돼서 웃으며 이 시절을 바라볼 것이다. 아빠가 무슨 의도로 나를 산과 만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산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었고, 덕분에 나는 지금 웃을 수 있다. 그 날 산이 내게 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이은경·제주중앙여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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