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화백의 제주4·3민중항쟁사 그림 가운데 「천명」이 있다. 하늘도 통곡하고 땅도 울었다는 초토화작전으로 거의 모든 마을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하고 숱한 인명이 살상이 되던 불바다가 된 중산간마을. 그 속에서 상처입은 남편을 들쳐업고 나오는 아낙네가 나온다.

 이 그림의 왼편으로 불길을 뚫고 한 할머니가 가슴에 병풍을 꼭 껴안고 뛰쳐나오는 장면이 시선을 잡아끈다. 아무리 생의 절박한 상황속에서도 내 조상을 모셔야한다는, 반드시 제사는 해야한다는 제주인의 미덕을 시사한 장면이다.

 조상에 대한 숭배는 우리민족이면 어느 지역이라고 덜할까만, 제주인의 조상에 대한 모심은 유독 극진하다. 때문에 혼기를 앞둔 여성들의 화제속에 “시집에 제사가 몇 번이냐”는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한다. 횟수에 따라 얼마나 힘든 시집살이가 될 것인가를 암시하는 말일 것이다.

 「제주도 속담사전」에 수집된 것만 봐도 조상숭배에 대한 그러한 선조들의 정신을 말해준다.‘귀신 물 그리게 허는 집 자손 안된다’‘귀신 박접 허는 집 자손 안된다’‘귀신은 먹은깝은 못헤도 못먹은 깝은 헌다.’는 등 속담이 산재해 있다.정말 조상은 잘 모셔야 할 그 이상의 존재인 것이다.

또한‘멩질날 닮으민 상덕 받을 사름 엇나’란 속담처럼 한때는 배불리 먹고 마음 편한 것이 최상의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계란 한꾸러미,곤쌀 한됫박,돼지고기 한근에도 마음 따스하던 고향의 명절이었다.힘들긴 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전시대의 여성들이었다.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가풍에 따라 사촌에 팔촌,그 이상까지 모여 차례를 지내는 곳이 대부분인 명절풍습을 묵묵히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명절풍속도도 많이 변했다.시대가 변하는데 이 부분 마저 변하지 않을까만.여성들의 몫으로 치부되는 차례상 차리기는 벌써부터 여성들의 마음을 지치게 만들고, 스트레스가 명절기분을 잃게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맞벌이 부부가 늘고 평등부부의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는데도 이 차례상 차리기만큼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함께 즐겁게 명절맞이를 하자며 어떤 여성단체는 즐거운 명절을 만들기위한 다섯가지 제안도 내놓았다.명절은 장남몫이 아니다.여자도 차례에 참여하자.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쉬자.

여성에 대한 명절금기를 없애자.따뜻함이 필요한 이웃과 함께 웃는 명절을 만들자는 것이다. 요즘 신세대부부들 사이에 제사와 명절이 활발히 논의 되고 있다.당연한 일이다.

 오죽했으면 최근에「나는 제사가 싫다」란 도발적인 제목의 책까지 나왔을까. 삼십년간 가부장제의 권위와 맞서 싸웠다는 50대의 충청도 출신 여성작가가 쓴 이책의 논지는 “제도란 인간이 만든 것이다.우리가 인간이라면 잘못된 제도는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부계 조상에 대한 제사가 마치 인간의 본능이라도 되는 듯이 여성에게 강요해온 이 제도를 나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또한 인간본연의 모습에 젖줄을 대놓고 있지 못한 제도를 어른으로서 내 후손들에게 절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는 그녀의 생각을 담고 있다.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질서가 제사라고 하는 틀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용감하게 부각시키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대한 공감과 거부감의 집중포화도 일시에 일어나고 있다.

 사이버시대를 사는 지금 세기엔 이미 사이버성묘까지 등장했다.물론 사이버성묘는 97년 홉킨스로 명명된 희귀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던 33세의 한 미국인이 처음 시도해 인터넷에 올린후 구미와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컴퓨터로 클릭하면서 위패 양쪽에 제상을 차리는 것이다.앞으로 어떻게 젯상의 형태가 변할지 예측할 수는 없다.어쨌든 서서히,혹은 급속히 변화가 올 것이다.

 새천년 첫 설을 맞는다.새천년이라고 명절풍속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누구든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명절이 되도록 하려면 먼저 ‘당연히 누가 준비해야한다’란 굳어있는 모두의 의식자체부터 바꿔져야 한다.무엇보다 설이란 이름속에는 우리에게 자꾸 잃어가는 마음을 찾게하고,고향의 그리운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허영선·편집부국장대우 문화부장><<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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