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 사회부 차장

우리나라의 국기 제정은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조인식 때 게양된 국기의 형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882년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발간한 '해상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이란 책에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게양된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태극기가 수록돼 있다. 2004년 발굴된 이 책자에 실린 태극기는 1882년 9월 수신사 박영효 선생이 만들었다고 전해진 태극기보다 몇 개월 앞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극기는 1882년 대한제국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였던 박영효 선생이 일본으로 가던 중 배 안에서 처음 만들었다. '사화기략(使和記略)'에 의하면 박영효 선생은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 4괘를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고종은 이듬해 1883년 3월 6일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다. 오늘날 통일된 태극기는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국기제작법이 고시되면서다.

태극기는 무궁화와 함께 국가를 뜻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상징이 됐다. 100년 전인 1919년 3·1만세운동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국민에게 나라사랑의 상징물로 보편화됐다. 태극기에는 일제의 탄압에 저항했던, 독립을 열망하며 희생한 애국지사들의 피가 서려 있고 혼이 담겨 있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며 태극기가 게양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많은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기 위해 피땀을 흘리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러한 태극기가 오늘날 홀대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해진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3·1절 서울 도심에서는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열렸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같은 태극기가 다른 의미로 펄럭였다.

태극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세력의 홍보 도구로 전락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은 일은 없어야 한다. 태극기는 오직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 진정한 뜻으로 펄럭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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