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 정치부차장

아이들이 하늘을 그릴 때 푸른색 크레파스가 아닌 잿빛 크레파스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가 수일째 희뿌연 먼지로 뒤덮혔다. 고농도 초미세먼지 때문이다. 회색빛 먼지는 바다 건너 위치한 제주까지 침범해 '청정 제주'라는 명성에도 금을 그었다.

미세먼지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이상기후현상과 함께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됐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후보 시절 '미세먼지 배출량 30% 감축 추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대책 특별기구' 신설을 통한 종합대책 수립·시행, 미세먼지 발신지인 중국과 함께 정상급 주요의제로 격상시킬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됐다. 종전에는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종종 눈에 띄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피부에 와닿는 불편함에 시민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스크가 필수품이 됐다. 아이들이 뛰놀던 학교 운동장, 놀이터도, 시민들이 활보하던 거리도 한산해졌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답답함'을 호소하며 정부에 미세먼지 대책을 요구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제서야 정부와 정치권이 분주하다. 문 대통령은 6일 "필요하다면 추가경정예산안을 긴급 편성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이는데 역량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자유한국당 나경원·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도 이날 비공개 회동을 갖고 미세먼지 관련법 본회의 처리 등 3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서경의 열명편에 나온다. 부열이 고종(高宗) 임금에게 한 말이다.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에 맞게 하십시오. 그 능한 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 공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다 그 갖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춘 것이 있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정부의 공약과 달리 긴급 추경을 편성할 만큼 당초 정부예산안이 미세먼지 대책에 미흡했다. 또 현재 국회에 개류중인 미세먼지 관련법은 모두 53개로, 국회 역시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심각성을 인지한 지금 '유비무환'의 뜻을 안고 속도있게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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