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희 제주여성인권연대 부설· 제주여성자활지원센터장

1년 전 뉴욕에서 여성의류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당시 여성의류노동자들은 하루 12~14시간을 노동하면서도 남성노동자들의 임금의 절반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1908년 2월 28일 1만5000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빵과 장미'를 달라며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과 성희롱방지를 요구했다. 이 날의 대규모 행진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이듬해부터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을 여성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했고, 이후 1910년 유럽을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어오던 '세계여성의 날'을 1975년 세계 여성의 해를 맞아 UN에서 3월 8일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다.

세계여성의 날의 상징인 '빵과 장미'는 노동권과 참정권을 통한 '여성에 대한 존엄'을 상징하고 있다.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시작으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재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후 지속되는 스포츠계 미투로 이어지면서 미투는 2018년과 2019년을 잇는 중요한 이슈가 됐다.

"좁은 제주에서 피해를 입었지만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이름 모를 여성 여러분들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싶었습니다.

나약한 제 울림이 '두려움'에 갇혀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는 피해여성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균열의 시작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는 제주지역의 미투의 시작을 알린 '피해자 미투선언문' 내용의 일부이다.

제주지역은 자신의 피해를 공론화 하는데 더 많은 한계와 피해자의 침묵이 강요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자신의 피해를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는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게 되고,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구속되었던 가해자가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나게 되는 이러한 법의 현실에서 피해자들은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미투 운동은 우리 일상의 성차별적 문화와 성폭력을 가능케 했던 사회구조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책임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은 무죄가 되고 이를 선고한 법정에 책임을 물을 수 조차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시선을 갖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미 대법원은 최근의 여러 판례들을 통해 '위력의 행사와 자유 제압이 없더라도 무형적 권세의 존재만으로 위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지역에서 항소심 선고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당시 제주시 조합장 신분을 갖고 있는 자가 그 지위를 이용해 행한 '위력에 의한 간음'을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가 판례를 인용하지 않고 위력에 대해 좁은 해석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이가 비교적 나쁘지 않았던 것'을 판단의 사유에 적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법적 판단에 기대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는 이러한 가해자 중심의 판단에 다시 길을 잃는다.

지난해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해 '젠더에 기반 한 폭력부분'에 대한 권고 사항인 '형법 297조 개정을 통한 성폭력의 판단을 폭력과 협박이 아닌 '동의'로, '부부강간죄 명시', '가정폭력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페지 및 화해와 중재 사용 금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형사소송 남용(무고, 명예훼손 등 역고소)을 막기 위한 조치' 등을 수용해야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우리 사회는 미투를 통해 보고되는 사례들을 개인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사회의 권력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성폭력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성차별과 불평등한 성별권력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합리적인 처벌과 그들의 반성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미투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이 사라지고 성평등이 실현되는 날까지 미투는 계속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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