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스토리 / 홍신자 현대무용가·안무가

지난해 봄 서귀포시 정착…시니어무용 이달 첫 공연
인생의 깊이 담은 작품 목표…세계에 문화도시 각인

"제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 최고 관광지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부족하다고 알려진 게 사실이죠. 인생의 깊이를 담은 현대무용으로 그것을 깨고 싶어서 왔습니다"

뉴욕 예술계에 한국 현대무용의 존재감을 뿜어냈던 전위 무용가이자 안무가, 명상가, 베스트셀러 작가인 홍신자씨의 얼굴에는 긴 세월이 선물한 여유와 동시에 숨길 수 없는 자신감도 엿보였다.

한국 문화계의 원로 거장 고 박용구 선생이 "한국무용의 계보는 궁중무용에서 최승희, 홍신자로 이어진다"고까지 표현한 그는 지난해 봄 서귀포시민이 된 이유에 대해 "인생의 황혼기에서 새로운 도전을 찾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 도전은 이달 홍신자 시니어무용단 첫 공연 'Now and Then'으로 시작된다. 모두 60대인 단원 7명이 삶의 경험과 연륜을 춤으로 녹여낸 창작 현대무용을 선보인다.

홍씨는 시니어에 주목한 이유로 "이제 나이 80이 되고보니 예술도 보이고 인생도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 전에는 천방지축처럼 실험과 여러가지 과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정리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니어들은 삶의 역사가 있지 않나. 무대에서도 60대와 20대 무용수 두명을 세워 보면 20대는 아리따운 아름다움이 있지만 60대가 풍기는 인생의 깊이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이제 80이 되니까 무대에 하나의 역사가 있는 삶을 살던 사람, 얼굴에 주름이 있고 무용가의 몸매는 아니더라도 느낌이 풍겨나는 사람들과 작품을 만들고 싶어졌다"고 덧붙였다.

일단 시작은 아마추어다. 수많은 훈련과 안무 연습을 마친 단원들은 나이와 신체에 맞는 동작, 각자의 추억과 현재를 몸짓으로 승화한 안무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이제는 아마추어인지 모를 정도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홍씨의 풍부한 해외활동 경험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번 시니어 공연을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해외에 선보이는 계획도 잡혀 있다.

특히 이번 공연으로 끝이 아닌, 세계 속에 서귀포를 현대무용으로 유명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홍씨는 "서귀포를 우리나라 10대 문화도시로 만드는 조성계획이 순항하고 있는데, 기존의 한국무용에 서귀포의 현대무용이 더해지면 가장 조화로울 것"이라며 "이번 공연 이후 구상중인 작품도 몇개 있어 적어도 한 해에 한 작품 이상은 해나가겠다. 마지막 정착지인 이곳에서 끝까지 끌고 가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홍신자씨는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3년 '제례'로 안무가·무용수로 데뷔함과 동시에 뉴욕 무용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20년 넘게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동양적 전위무용의 선구자로 이름을 떨쳤다. 1993년에는 자전적 저서 「자유를 위한 변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귀국해 16년간 죽산국제예술제를 개최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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