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논설위원

신문을 읽다가 우연히 미국의 은퇴 정객의 부고 기사를 읽었다 .59년 동안 최장수 하원의원을 지내신 고 존 딩걸 의원이다.

빈 클린턴 전 대통령은 조사에서 "의회를 거쳐 간 중요한 법안 중 존 딩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별로 없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지는 "지금은 희귀종이 됐지만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치인의 소명을 워싱턴에서 가장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물론이고 미국의 50개 주 청사에도 모두 조기가 달렸다고 하니, 존 딩걸이 미국에서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
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존 딩걸이 현역의원 시절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나가자 계속 '삑' 소리가 났다고 한다. 젊은 시절 엉덩이 수술로 금속을 박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도 검색요원들은 믿지 않고 그를 사무실로 데려가 수술부위를 확인했다고 한다.

수차례 검색대를 지나고 바지까지 벗는 동안 자신이 의원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특혜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무실을 나와 허허 웃으며 "(이렇게 철저히 조사하는 것을 보니) 미국의 하늘은 안전하구나" 했다고 한다.

동료였던 테드 도이치 하원의원은 자신이 처음 의원이 됐을 때 이런 충고를 들었다고 한다.

"당신은 중요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당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이 글을 읽자니 얼마 전에 인천공항에서 갑질한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생각났다. 신원확인을 위해 모자 벗기를 요청하자 검색요원에게 갑질을 했다는 기사다. 보안검색을 철저히 받는 것은 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그런 과정이 무시되면 문세광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비단 이 국회의원만이 아니다. 우리들은 이런 상황을 너무 자주 접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 특권을 내세워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으려 하든가 불법을 눈감아 주기를 요청한다. 또는 자신의 지위와 상관  없는 곳에서도 행세를 하려고 한다.

병원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이들을 꼽으라면 단연 이런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다가 병원에 와서 다른 이들과 같은 대접을 받으라고 하면 괜히 푸대접 받는 기분이 든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데,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이야 말해 무엇 할까.

침상도 집에서 쓰는 것보다 불편하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으며 정부에서 정하는 식대로는 집에서 먹는 것처럼 할 수 없을뿐더러, 단체 급식을 하다 보면 음식도 식고 각 개인의 좋아하는 반찬을 마련한다든가 간맞추는 것도 어렵다. 텔레비전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조용히 자고 싶은데 옆에서 부스럭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체온이다, 혈압이다 재러 오고 전기불도 완전히 꺼지지 않다 보니 여러 가지로 불만이 있기 마련이다.
 

집에서 대접을 잘 받던 이들일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니 불만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특별대우를 해주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일도 있었다.

육지에서 계란에 문제가 생겨 대량으로 수거하던 때에 반찬에 계란이 나왔다고 노발대발 간호사들을 다그친 환자도 있었다. 문제가 된 달걀을 사용했다면 당연히 항의해도 되겠지만 제주도에서 아무 문제 없을때에 그러니 원장이 나서서 "저도 아침에 계란을 먹고 나왔습니다"하고 달래야 했다.

그러나 제주도 제1호 종합병원인 한국병원의 초창기와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느낌이다. 그 당시 저녁 늦은 밤 11시에 술을 먹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인을 면회하려고 했는데 들여보내주지 않는다고 항의한 사람도 있었다. 차례를 무시하고 빨리 봐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 모두가 규칙과 질서를 지키고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습관을 키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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