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경 제주국제대학교 호텔관광과 교수·논설위원

17세기 초 에도막부 시대 서민들은 '스코테가타(通行手形)'라는 통행증을 발급받아 신사(神社)와 불사(佛寺)를 오가는 순례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 대중화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일본의 여행업이 유럽보다 200년이 앞선 이유이다. 여행의 대중화로 업소 간에 여행객 확보 경쟁이 치열해졌다.

'집을 청소하고 깨끗한 옷을 입어, 손님이 좋은 인상을 갖고 떠날 수 있도록 하라.' 료칸에 도착한 손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정좌를 한 자세로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깊숙이 인사를 하는 일본식의 다듬어진 친절문화인 '오모테나시(Hospitality, 대접과 환대문화)'의 유래도 이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기내식 등장은 1919년 런던과 파리 노선의 런치박스로 샌드위치와 과일을 포장한 콜드밀인데 개당 3실링에 제공했다.

1936년 미국항공사 United Airlines이 기내에 주방을 들이며 따뜻한 기내식이 가능해졌고 1950년대 후반 항공료에 대한 각국 정부의 통제는 항공사들의 기내식 무한경쟁을 초래하며 1960년대 초부터 70년대 중반까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초호화 기내식이 풍미하며 랍스터, 양갈비 구이, 캐비아, 푸아그라에다 주방장이 직접 음식을 서빙하거나, 소믈리에까지 등장하는 '비행역사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빨간색 통에 호랑이그림이 그려져 있는 박하향이 나는 연고는 예전 중화권 여행객의 필수 여행선물이었다.
 

호랑이연고에 호랑이기름이나 뼛가루, 털 하나 안 들어가지만, 관절염, 타박상, 코감기, 모기 물린대, 심지어 복통까지 집집마다 책상서랍에 몇 개씩 굴러다니는 요긴한 가정상비약이었다.

코끼리마크가 그려진 일본제 조지루시 코끼리밥솥도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직장 다니는 기혼여성이 늘면서 당시 주부들에게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아이템이었다.

일본여행객마다 양손에 하나씩 들고 또 하나는 발로 차면서 김포공항 입국장을 들어왔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꿀같이 달콤한 달' 허니문(Honeymoon)을 '밀월(蜜月)'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Honey)'과 보내는 '한 달(Moon)'의 달콤함이 느껴진다.

신혼여행의 유래를 원시시대 약탈혼에서 찾기도 한다. 훔쳐온 신부를 신부가족에게서 빼돌리려고 멀리 달아났던 게 신혼여행의 기원이라는 얘기다.

제일 설득력 있는 건 결혼식 후 친지방문이다. 19세기 초 영국의 상류층들이 결혼식에 참석 못한 친척들을 방문하려고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했는데 그게 나중에 유럽전역에 퍼진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돈 있는 자본가계층의 새로운 여가문화이다.

우리나라 신혼여행 첫 기록은 1920년 4월이다. 여성화가인 나혜석이 남편과 옛 애인이 묻혀 있는 전남 고흥으로 신혼여행을 간 것이 시작이다. 특수계층들만의 호사에서 서민층까지 전파된 건 1970년대 들어섰다.

온양, 경주, 속리산, 부산 등 형편이 넉넉한 부부들은 제주를 선호했다. 1980년대 제주는 신혼부부들의 로망이고 성지였다.

짙은 양복에 연분홍 한복 차림으로 성산일출봉, 천지연폭포, 성읍민속마을 등 방문지도 뻔했고, 들국화 멤버였던 최성원이 1988년 발표한 '제주도 푸른 밤'의 노랫말처럼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 바로 그 시절이다.

이제 여행은 이벤트가 아니고 일상이다.

여권이 통행증을 대신하고 콜드밀은 저가항공의 차지가 되었고, 전기밥솥은 중국인 관광객의 몫이다.

여전히 제주엔 예비신혼부부들이 밀려와 사려니숲, 김녕해변, 백약이오름에서 그들만의 웨딩사진을 찍는다. 제주사람의 친절을 얘기하고 낑깡 보따리를 챙긴다.

단지 바뀐 것은 여행을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로 보고 새로운 풍경보다는 자신을 들여다보는데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여행 속 여행은 결국 나 자신으로의 여행이고 많은 이들이 제주를 찾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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