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인 가운데 미국의 탈북자에 대한 자세가 우리를 분노케 한다. 미국이 탈북자를 인정하지 않을 방침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영토나 국경에 와서 망명신청을 하는 경우에만 허용을 검토할 수 있다"면서 "해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나 시설은 치외법권지대일 뿐 미국 영토는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대변인의 입을 통해 탈북자의 망명을 사전에 봉쇄한 것이다.

미국의 자세가 미국 법률이나 국제법상 틀린 것은 아니다. 외교 공관은 망명신청지가 아니며 정치범 또는 난민을 보호할 수 있는 비호권(庇護權)이 없다는 게 국제적 관례다. 그러나 외교 공관에는 주재국의 사법권이 적용되지 않는 불가침권이 있으므로 관내로 들어온 사람을 보호할 현실적 능력은 충분하다. 결국 의지가 문제일 뿐 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미 베이징 주재 대사관에 피신한 중국 반체제 학자를 1년 이상 보호하여 영국으로 망명시킨 사례가 있다.

미국은 항상 인권국가임을 자랑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도 미국의 인권기준을 적용토록 강요한다. 탈북자가 다른 나라 공관에 진입하면 중국에 인권 차원의 해결을 촉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우리는 탈북자를 못 받겠다"는 것이다. 분명한 이중 잣대다.

이런 현상은 지난번 길수군 가족 5명의 선양 일본총영사관 진입사건 때 일본에서도 드러났다. 주중 일본대사가 "탈북자가 대사관에 들어 올 경우 쫓아내라"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었다. 사실 중국도 탈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이들을 홀대한 경우가 있었다.

탈북자를 이렇게 "국제 미아"로 둘 수는 없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게 할 수 없다. 탈북자 문제의 해결을 시스템화하는 일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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