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예가 아니다=‘청춘을 받쳐 일했는데 월급 40만원이 왠 말이냐’제주시 삼도1동 농협중앙회 부근에 위치한 대우자동차 제주영업소. 전시된 차량을 투명하게 비춰주던 유리에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구호들이 대신 자리를 잡았다. 영업소 간판이 철거된 지도 두 달이 넘었다.

노동조합 해체와 직원들의 비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대우자동차와 GM측에 맞서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싸움이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7년 동안 대우자동차를 팔아온 양우철씨(36·대우차판매 노조 제주분회 소속)는 “4인 가족 기준 최저임금이 98만원이라는데 이보다 못한 것을 강요하는데 참을 수는 없다”면서 “직급수당 등의 명분으로 현재 회사에서 지급되는 돈은 한 달에 2∼3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간접고용에 의한 비정규직 문제로 홍역을 앓기는 대한항공 면세점도 예외는 아니다. 면세점 노동조합이 농성을 시작한지도 한 달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이선영씨(36·한진관광노조 제주칼 면세점 지부장)는 “실질적인 사업주인 대한항공이 직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면서“다른 용역업체로 넘기지 않겠다던 단체협약마저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9일부터 연봉계약직 문제로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한 한라병원의 경우 병원측과 노조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도내 임금노동자의 61%가 비정규직=실제 통계청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조사(2001년 12월말 기준)에서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52.0%로 나타났다.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이라는 전통적인 구분법 대신 ‘제3계급은 비정규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산해 냈다.

임시 계약직, 시간제 노동, 파견·용역직 등 비정규직 문제는 도내에서도 개별적인 사업장별 노·사간 갈등 사례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98년 IMF 이후 구조조정 여파로 인해 도내 각 행정기관을 비롯 도내 1급이하 호텔, 병원 간호사, 농협 직원, 시중은행, 114 안내직원, 우체국 집배원, 중소기업 등 전 분야에서 계약직 등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증가하고 있다. 제주시청의 경우 환경미화원 노동조합까지 설립됐다.

통계청 제주통계사무소가 지난 5월16일 밝힌 ‘4월 중 고용동향’에 따르면 도내 임금근로자는 15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상용근로자는 6만명인 반면 임시직은 6만1000명으로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섰다. 일용직 3만3000명까지 포함할 경우 도내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61%나 됐다.

비교적 안정적 직장이라고 평가됐던 도내 금융기관에서도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지난 2월19일 발표한 ‘제주지역 금융기관 인원 변동현황’이 이를 반영해 준다. 도내 예금은행의 계약직원수는 99년 전체직원의 22.4%인 294명에서 2001년말 현재 35.6%인 42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문제점과 해법은?=기업의 입장에서 비정규직 채용의 증가는 기업 경영의 효율성에 토대
를 두고 있다.

정규직보다 싼 임금으로 채용할 수 있어 비용절감의 효과와 함께 1년 단위로 고용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어 인력관리에 효율적이다.

반면 비정규직의 입장에서는 정규직과 똑같이 일을 해도 임금 삭감, 연월차 수당 미제공은 물론 상여금, 퇴직금이 정규직에 비해 20∼30%에 그치게 된다.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의 혜택으로부터도 소외되며 1년 단위 계약에 따른 고용불안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한라병원 노조측은 연봉계약직의 본질을 ‘1년 살이 노동자’를 만들어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라고 까지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보고서’(2002년 5월)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단체협약상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사업장은 조사대상 326개 노조 가운데 9.5%인 31개에 그쳤다. 노동조합도 아직까지는 정규직들만의 공간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정비가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노동계에서는 △근로기준법 개정 등을 통한 독립사업자 형태의 특수고용 계약직의 노동자 인정 △파트타임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조항 신설 △근로자 파견제 철폐 및 불법도급 용역의 근절 등을 요구하고 있다.

고승남 민주노총 제주본부 교육선전국장은 “정부가 나서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과 함께 일자리 나누기 등 사회적 합의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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